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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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20190728)

최고관리자
2019.08.03 10:15 28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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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Address Before the Angelus (July 28, 2019)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In today’s Gospel page (Cf. Luke 11:1-13), Saint Luke narrates the circumstances in which Jesus teaches the “Our Father” to His disciples. They already know how to pray, reciting the formulas of the Hebrew tradition, but they also want to live the same “quality” of Jesus’ prayer. They can see that prayer is an essential dimension in the life of the Teacher; in fact, every important action of His is characterized by prolonged pauses of prayer. Moreover, they are fascinated because they see that He doesn’t pray as the other teachers of prayer of the time, but His prayer is an intimate bond with the Father, so much so that they want to be participants in these moments of union with God to savor its sweetness completely.

교황님의 삼종기도 전 강론 (2019.7.28. 주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복음에서 (루카 11,1-13) 성루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신 상황을 전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히브리 전승 양식을 노래하는 기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에서 기도가 핵심적인 차원이고, 모든 중요한 활동의 순간에 긴 기도를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 기도와 같은 “수준”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님의 기도가 당시의 다른 교사들의 기도와 같지 않고, 그분의 기도는 성부와의 끈끈한 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고 그만큼 그 달콤함을 완전히 음미하기 위해서 하느님과의 결합의 순간들에 참여하고 싶어 했습니다.

So, one day, waiting for Jesus to finish His prayer in a place apart, they then ask Him: “Lord, teach us to pray” (v. 1). Responding to the disciples’ explicit request, Jesus doesn’t give an abstract definition of prayer or teach an effective technique to pray and “obtain” something. Instead, He invites His own to have an experience of prayer, putting them directly in communication with the Father, arousing in them nostalgia for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Him, with the Father. Here is the novelty of Christian prayer! It’s a dialogue between persons that love each other; a dialogue that is based on trust, supported by listening and open to solidary commitment. It’s a dialogue of the Son with the Father, a dialogue between children and the Father. This is Christian prayer.

그래서 하루는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절) 제자들의 분명한 요청에 답하시어,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추상적인 정의를 내리시거나 기도하는 효과적인 기술을 가르쳐서 무엇인가를 “얻도록”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기도의 체험에 그들을 초대하여 아버지와 직접대화를 하도록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 안에 하느님과의,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십니다. 여기에 크리스천 기도의 참신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입니다. 신뢰에 바탕을 두고, 경청과 연대에 대한 개방으로 지지 받는 대화입니다. 그것은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입니다. 아이들과 아버지 사이의 대화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 기도입니다.

Therefore, He gives them the prayer of the “Our Father,” which is one of the most precious gifts left to us by the Divine Teacher in His earthly mission. After having revealed His mystery of Son and brother, with this prayer Jesus makes us penetrate in God’s paternity and He shows us the way to enter into prayerful and direct dialogue with Him, through the way of filial trust. It’s a dialogue between a Daddy and his child and of the child with his Daddy. What we ask for in the “Our Father” is already realized and given to us in the Only-Begotten Son: the sanctification of the Name, the coming of the Kingdom, the gift of bread, of forgiveness and of freedom from evil. While we ask, we open our hand to receive. To receive the gifts that the Father has made us see in the Son. The prayer that the Lord taught us is the synthesis of every prayer, and we address it to the Father always in communion with brethren. Sometimes it happens that there are distractions in prayer, however, many times we feel the desire to pause on the first word: “Father,” and to feel that paternity in our heart.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주십니다. 지상에서의 공생활 중에 신적인 스승께서 남기신 가장 값진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아들과 형제의 신비를 드러내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부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부자간의 신뢰의 길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기도와 직접적인 대화에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아빠와 그의 자녀와의 대화이고, 자녀와 그의 아빠와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청하는 것은 이미 그분의 외아들 안에서 실현되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들은 하느님 이름의 성화, 하느님 나라의 임하심, 일용할 양식의 선물, 죄의 용서와 악에서의 해방입니다. 우리가 요청할 때 우리는 받기 위해 손을 벌립니다. 아버지께서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하신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모든 기도의 종합입니다. 우리는 항상 형제들과의 친교 안에서 이 기도를 아버지께 바칩니다. 가끔 분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우리는 첫 단어 “우리 아버지,”후에, 참시 멈춰서 우리 가슴에 부성을 느끼고자 합니다.

Then Jesus tells the parable of the importunate friend, and, Jesus says: “it’s necessary to insist in prayer.” There comes to mind what children who are three or three and a half years old do: they begin to ask for things they don’t understand. In my land, it’s called “the age of the why,” I believe it’s the same here. The children begin to look at the Dad and say: “Daddy, why? Daddy, why?” They ask for explanations. We are careful: when Dad begins to explain why they ask another question without listening to the whole explanation. What’s going on? It happens that children feel insecure about so many things, which they begin to understand in part. They only want to attract their Dad’s look on them and so they ask: “Why, why, why?” In the Our Father, we, if we pause on the first word, will do the same thing as we did when we were children, to attract the Father’s look on us. We’ll say: “Father, Father, and also say: “Why?” And He will look at us.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가시게 구는 친구의 예화를 말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도할 때 강하게 청할 필요가 있다.” 3살 또는 3살 반 되는 아이들이 하는 짓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청합니다. 우리 고향에서 그들을 “왜? 의 나이”라고 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선 아빠를 쳐다보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빠, 왜? 아빠, 왜?” 그들은 설명을 요구합니다. 이때 조심해야 합니다. 아빠가 설명을 시작할 때 아이들은 전체적인 설명을 듣지 않고 또 다른 질문을 합니다. 왜일까요? 아이들은 부분적으로 알아가기 시작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다만 그것들에게 대해 아빠가 지켜봐줄 것만 원합니다. 그래서 계속, 왜? 왜? 왜? 하고 묻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첫 단어에서 잠시 멈추면,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같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지켜봐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빠, 아빠, 그리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그러면 아버지가 우리를 바라보실 것입니다.

Let us ask Mary, woman of prayer, to help us to pray to the Father united to Jesus to live the Gospel, guided by the Holy Spirit.

기도의 여인 마리아께 청합시다. 저희를 도우셔서, 저희가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님의 안내에 따라 복음을 살 수 있도록 아버지께 기도하게 하소서. 

[Original text: Italian]  [ZENIT’s translation by Virginia M. Forrester]

한글번역: 윤영학 아오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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