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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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11.25 09:08 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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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on Nov 21,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Our meetings on the Decalogue lead us today to the last Commandment. We heard it at the opening. These are not only the last words of the text but much more: they are the fulfillment of the journey through the Decalogue, touching the heart of all that has been given to us in it. In fact, in hindsight, they don’t add a new content: the indications “do not covet the wife [. . . ] or anything that belongs to your neighbor” is at least latent in the Commandments on adultery and on theft; what, then, is the function of these words? Is it a summary? Is it something more?

 

교황님의 교리 (2018.11.21.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십계명에 대한 만남이 오늘 마지막 계명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처음 시작할 때 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이 마지막 말씀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것 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열 가지 계명의 모든 핵심을 담은 십계명에 대한 여정의 완성입니다. 사실상, 다시 돌이켜보면, 이 계명은 새로운 내용을 추가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웃의 아내나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의 의미는 간음과 도둑질에 대한 계명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열 번째 계명의 기능은 무엇인가요? 요약입니까? 그 이상입니까?

 

Let us keep very present that all the Commandments have the task to indicate the boundary of life, the limit beyond which man destroys himself and his neighbor, spoiling his relationship with God. If you go beyond, you destroy yourself; you also destroy the relationship with God and the relationship with others. The Commandments point this out. Highlighted through this last Word is the fact that all transgressions stem from a common interior root: evil desires. All sins are born from a wicked desire all. The heart begins to move there, and one enters that wave and ends up in a transgression. But not a formal, legal transgression: it’s a transgression that wounds oneself and others. The Lord Jesus says it simply in the Gospel: ”From within, out of the heart of man, come evil thoughts, fornication, theft, murder, adultery, coveting, wickedness, deceit, licentiousness, envy, slander, pride, foolishness. All these evil things come from within, and they defile a man” (Mark 7:21-23).

 

모든 계명이 삶의 경계를 나타내는 사명이 있음을 상기합시다. 넘어서면 인간이 자신과 자신의 이웃을 파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망치게 되는 경계 말입니다.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은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과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십계명에서는 이것을 지적합니다. 이 마지막 말씀에서 강조된 것은, 계명을 어기는 모든 행동은 공통된 내적 근원인 악의 욕망에서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사악한 욕망에서 나옵니다. 모두 그렇습니다. 마음은 거기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파도에 휩쓸리면, 계명을 위반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공적이고, 법적인 위반이 아닙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위반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마르코 7,21-23)

 

We understand, therefore, that the whole journey undertaken in the Decalogue would be of no use if it didn’t arrive at touching this level: man’s heart. From where are all these awful things born? The Decalogue is lucid and profound on this aspect: the point of arrival the last Commandment of this journey is the heart and if this, if the heart isn’t freed, the rest is of little use. This is the challenge: to free the heart from all these wicked and awful things. God’s precepts can be reduced to being only the beautiful facade of a life, which in any case remains an existence of slaves and not of children. Often, behind the Pharisaic mask of asphyxiating correctness, something awful and unresolved hides.

 

그러므로 십계명을 다룬 전체 여정이 이 수준, 즉 인간의 마음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이 어디서 생겨났습니까? 십계명은 투명하고 심오하게 이 것을 말해줍니다. 이 여정의 끝, 마지막 계명에서 도달해야 하는 곳은 마음이고, 만약 마음이 자유롭지 않다면, 나머지는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사악하고 끔찍한 것들에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 이것이 도전 과제 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단지 아름다운 삶의 허울로 축소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 아닌 노예의 존재만 남습니다. 종종 숨 막힐 정도로 정확한 바리새인의 가면 뒤에는 끔찍하고 해결되지 못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습니다.

 

Instead, we must let ourselves be unmasked by these Commandments on desire because they show us our poverty, in order to lead us to a holy humiliation. Each one of us can ask him/herself: but what ugly desires come often to me? Envy, greed, gossip? all these things that come to me from within. Each one can ask him/herself and it will do him/her good. Man is in need of this blessed humiliation, that <humiliation> by which he discovers that he cannot free himself on his own; that <humiliation> by which he cries to God to be saved. Saint Paul explains it in an insuperable way, precisely in referring to the Commandment not to covet (Cf. Romans7:7-24).

 

그 대신에 우리는 욕망에 대한 이 계명들을 통해 우리의 가면을 벗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계명들은 우리를 거룩한 굴욕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의 가난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봅시다. “어떤 추악한 욕망이 나에게 종종 다가옵니까? 시기, 탐욕, 험담?” 내게 오는 이 모든 것들은 내 안에서 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고,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이 축복의 <굴욕>을 필요로 합니다. <굴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굴욕>은 하느님께 구원 받고자 하는 외침입니다. 성 바오로는 대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정확히 언급하며 이것을 설명합니다. (로마서 7,7-24 참조)

 

It’s vain to think that one can correct oneself without the gift of the Holy Spirit. It’s vain to think we can purify our heart in a titanic effort of our will alone: this isn’t possible. It’s necessary to open oneself to a relationship with God, in truth and in freedom: only thus can our efforts bear fruit because it’s the Holy Spirit that leads us forward.

 

성령의 선물 없이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우리 의지의 엄청난 노력만으로 우리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이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가슴을 열어 진리와 자유 안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직 이를 통해서만이 우리의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앞으로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The task of the biblical Law is not to deceive man that a literal obedience will lead him to a doctored salvation and, moreover, unreachable. The task of the Law is to lead man to his truth, namely, to his poverty, which becomes a genuine opening and personal opening to God’s mercy, which transforms us and renews us. God is the only one able to renew our heart, on the condition that we open our heart to Him: it’s the only condition. He does everything, but we must open our heart to Him. The Last Words of the Decalogue educate all of us to acknowledge ourselves beggars; they help to put us before the disorder of our heart, to stop living egotistically and to become poor in spirit, authentic before the Father, letting ourselves be redeemed by the Son and taught by the Holy Spirit.

 

성서 율법의 사명은 문자 그대로의 순종이 교리적 구원으로, 나아가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끌 것이라고 인간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사명은 인간을 자신의 진실, , 자신의 가난으로 이끄는 것이며, 자신의 진실, 가난은 하느님의 자비를 향한 진정한 개방과 개인적인 개방이 되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쇄신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개방한다면, 우리 마음을 쇄신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 유일한 조건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지만, 우선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열어야 합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 모두가 거지임을 인식하도록 가르칩니다. 마지막 계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장애 앞에 서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멈추고, 영적으로 가난해지며, 성부 앞에 진실 된 자신이 되고, 자신을 맡겨 성자로부터 구원을 받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도록 합니다.

 

The Holy Spirit is the Teacher that guides us: we must let ourselves be helped. We are beggars; let us ask for this grace.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Matthew 5:3). Yes, blessed are those that stop deceiving themselves, believing that they can save themselves from their weakness without God’s mercy, which alone can heal. Only God’s mercy heals the heart. Blessed are those that acknowledge their wicked desires and with a repentant and humiliated heart are not before God and other men as just ones but as sinners. What Peter says to the Lord is beautiful: “Depart from me, for I am a sinful man, O Lord.” This is a beautiful prayer: “Depart from me, for I am a sinful man, O Lord.”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는 선생님이십니다. 성령의 도움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걸인입니다. 이 은혜를 구합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3)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없이 스스로가 자신의 결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을 멈춘 이들을 복됩니다. 오직 하느님의 자비만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굴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사악한 욕망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한 이들은 복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말한 것은 아름답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십시오.” 이것은 정말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십시오.”

 

These are the ones who are able to have compassion, who are able to have mercy on others because they experience it in themselves.

 

이런 이들이 동정심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이고, 다른 이에게 자비로울 수 있는 이들입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Original text: Italian] [ZENIT’s translation by Virginia M. Forrester]

© Libreria Editrice Vatican

 

 

한글번역: 황민영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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