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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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

최고관리자
2018.11.17 11:44 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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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Address Before the Angelus (November 11,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oday’s Gospel episode (Cf. Mark 12:38-44) closes the series of teachings Jesus imparted in the Temple of Jerusalem and highlights two contrasting figures: the scribe and the widow. But why are they opposite? The scribe represents important, rich and influential people. The other, the widow, represents the least, the poor and the weak. In reality Jesus’ resolute judgment in dealing with the scribes, doesn’t concern the whole category, but refers to those that exhibit their social position, who are proud of their title “Rabbi,’ that is, teacher, who love to be waited on and occupy the first places (Cf. vv. 38-39). What is worse is that their ostentation is especially of a religious nature because they pray says Jesus “long prayers to be seen” (v. 40) and make use of God to credit themselves as defenders of His law. And this attitude of superiority and vanity leads them to have contempt for those that count little and are in a disadvantaged economic position, such as the widow.

 

교황님의 삼종기도 전 강론 (2018.11.11. 주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복음은 (마르코 12,38-4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일련의 가르침의 마지막에 해당하며 서로 상반된 두 사람 즉 율법학자와 과부에 관해 얘기합니다. 이 두 사람이 왜 상반될까요? 율법학자는 중요하고 부자이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과부는 작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실제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단호한 판단은 모든 율법학자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위인 랍비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랍비는 선생님으로서 사람들이 받드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38-39) 가장 나쁜 것은 그들의 과시가 종교적인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기도는 길게 합니다.” (40절 참조)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방어하는 사람들로서의 공적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을 이용합니다. 이 우월감과 자만심의 태도 때문에 그들은 과부와 같이 사회적으로 보잘것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합니다.

 

Jesus unmasks this perverse mechanism: He denounces the oppression of the weak made instrumentally on the basis of religious motivations, saying clearly that God is on the side of the least. And to impress this lesson thoroughly in the disciples’ mind, He gives them a living example: a poor widow, whose social position was insignificant, because she didn’t have a husband who could defend her rights and therefore became an easy prey of an unscrupulous creditor, because these creditors persecuted the weak to make them pay. This woman, who puts only two coins in the Temple’s treasury, all that she had left, makes her offering, hoping to go unnoticed, almost embarrassed. However, in this humility, she in fact carries out an act charged with the religious and spiritual meaning. That gesture, full of sacrifice doesn’t escape Jesus’ attentive gaze who rather sees shine in it the total gift of self, to which He wants to educate His disciples.

 

예수님께서는 이 그릇된 구조를 드러내시며, 종교적인 동기를 근거로 약한 사람에게 행하는 억압을 나무라시고, 하느님께서는 가장 작은 사람들 편이시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사회적 지위가 약한 가난한 과부를 살아있는 예로 제시하십니다. 과부는 자신을 권리를 지켜줄 남편이 없고, 약한 사람들을 박해하여 빚을 갚도록 하는 부도덕한 채권자의 쉬운 먹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전부인 동전 두 닢 모두를 성전의 봉헌 바구니에 넣은 이 여인은 남이 보지 않기를 바라고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겸손 안에 여인은 사실 신앙적 영적 의미가 가득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큰 희생의 그 행동을 예수님께서 놓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바친 온전한 선물인 그 행동 안에서 빛을 보시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길 원하십니다.

 

The teaching that Jesus gives us today helps us to recover what is essential in our life and fosters a concrete and daily relationship with God. Brothers and sisters, the Lord’s scales are different from ours. He weights differently persons and their gestures: God doesn’t measure the quantity but the quality, scrutinizes the heart and looks at the purity of the intentions. This means that our “giving” to God in prayer and to others in charity must always shun ritualism and formality, as well as the logic of calculation, and be an expression of gratuitousness, as Jesus has done with us: He has saved us for free. And we must do things as an expression of gratuitousness.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은 우리가 삶의 근본적인 것을 회복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구체적이고 매일의 관계를 증진시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잣대는 우리의 잣대와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다르게 재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양보다 질을 재시고, 가슴을 보시고 의도의 순수성을 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드리고,” 자선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줄 때,” 항상 예식에 대한 집착, 형식, 논리적 계산을 피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이 공짜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짜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우리도 공짜로 해야 합니다.

 

See why Jesus points out that poor and generous widow as a model of Christian life to imitate. We don’t know her name, but we know her heart we will certainly find her in Heaven and will go to greet her and that’s what counts before God.

 

예수님께서 왜 그 가난하고 너그러운 과부를 우리가 모방해야 할 크리스천의 모델로 가리키셨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의 마음을 압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그를 분명 발견할 것이고 그에게 인사하러 다가갈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는 중요합니다.

 

When we are tempted by the desire to appear and to be taken into account for our altruistic gestures, when we are too interested in other’s look and allow me the word when we are like “peacocks,” let us think of this woman. It will do us good: it will help us to strip ourselves of the superfluous to go to what really counts, and to remain humble.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우리의 이타적인 행동을 알아줬으면 하는 욕망이 우리를 유혹할 때, 다른 사람의 이목에 너무 신경을 쓸 때, - 이런 말을 용서해주신다면, 우리가 공작새와 같이 될 때, 우리 모두 이 여인을 생각합시다. 그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중요한데 도달하는 데에 아무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고, 겸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May the Virgin Mary, a poor woman who gave herself completely to God, support us in our resolution to give to the Lord and to brethren not something of ours, but ourselves, in a humble and generous offer.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주신 가난한 여인이신 동정 마리아여, 주님께 그리고 이웃에게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닌 우리 전체를 겸손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드리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지지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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