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영어성경묵상

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11.10 11:14 72 0

본문

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on Oct 24,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In our itinerary of catecheses on the Commandments we come today to the Sixth Word, which has to do with the affective and sexual dimension, and states: “Do not commit adultery.” The immediate call is to fidelity and, in fact, no human relationship is authentic without fidelity and loyalty.

 

교황님의 교리 (2018.10.24.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재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십계명에 대한 교리 여행에서 오늘 우리는 정서적이고 성적인 차원을 다루는 여섯 번째 말씀, “간음해서는 안된다에 이르렀습니다. 당면한 이 부름은 충실함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인간 관계도 충실과 충성 없이는 진실하지 못합니다.

 

One can’t love as long as it’s “convenient”; Love manifests itself precisely beyond the threshold of self-interest, when all is given without reservations. As the Catechism affirms: ”Love seeks to be definitive; it cannot be an arrangement ’until further notice’” (n. 1646). Fidelity is the characteristic of the free, mature <and> responsible human relationship. A friend also shows himself authentic when he remains such, regardless of any eventuality; otherwise he isn’t a friend. Christ reveals authentic love, He who lives of the boundless love of the Father, and by dint of this He is the faithful Friend who welcomes us even when we make a mistake and always wants our good, even when we don’t deserve it.

 

누구도 편리함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이 거리낌 없이 주어질 때, 사리사욕의 문턱을 넘어 정확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교리문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랑은 확정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추가 통보가 있을 때까지로 예정될 수 없습니다” (n. 1646). 충실함은 자유롭고,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인간 관계의 특징입니다. 친구 또한 어떤 상황에서라도 곁에 남아있을 때 진실한 친구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 안에 사시며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는 우리가 실수 할 때에도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가 자격이 없더라도 늘 우리에게 좋은 것을 바라시는, 충실한 친구이십니다.

 

The human being has need of being loved unconditionally, and one who doesn’t receive this reception bears within him certain incompleteness, often without knowing it. The human heart seeks to fill this void with surrogates, accepting compromises and mediocrity, which have only a vague flavour of love. The risk is to call “love” acerbic and immature relationships, with the illusion of finding light of life in something that, in the best of cases, is only a reflection of it.

 

인간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이렇게 받아들임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가 알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 안에 특정한 불완전함을 갖게 됩니다. 인간의 가슴은 그저 모호한 사랑의 느낌만을 가지고 있는 것의 불충분함과 절충을 받아들이며, 대리물로 이 공허함을 채우고자 합니다. 최선의 경우, 사랑의 반영밖에 되지 않는 것 안에서 삶의 빛을 찾았다는 환상을 가지고 사랑을 가혹하고 미성숙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Thus it happens, for example, that physical attraction is overvalued, which in itself is a gift of God, but its end is to prepare the way for a genuine and faithful relationship with the person. As John Paul II said, the human being “is called to full and mature spontaneity of relationships,” which “is the gradual fruit of discernment of the impulses of one’s heart.” It’s something that is won, from the moment that every human being “must learn with perseverance and coherence what is the meaning of the body” (Cf. Catechesis, November 13, 1980).

 

따라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예를 들어, 육체적 매력이 과대평가됩니다. 육체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 목적은 사람과의 진실하고 충실한 관계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말씀하셨듯이, 인간은 가슴의 충동을 분별하는 점진적인 열매관계의 자발성을 완전하게 하고 성숙시키도록요구 받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인내와 일관성으로 배워가는시간을 통해 노력하여 얻는 것입니다. (Cf. Catechesis, November 13, 1980)

 

The call to the conjugal life requires, therefore, a careful discernment on the quality of the relationship and a time of engagement to verify it. To accede to the Sacrament of Marriage, the engaged couple must mature the certainty that the hand of God is in their bond, who precedes them and accompanies them, and will enable them to say: “With the grace of Christ I promise to be faithful always.” They can’t promise themselves fidelity “in joy and in sorrow, in health and in sickness,” and to love and honour one another all the days of their life, only on the basis of good will or of the hope that “the thing will work.” They are in need of basing themselves on the solid ground of the faithful Love of God. And because of this, before receiving the Sacrament of Marriage, there must be careful preparation, I would say a catechumenate, because one stakes one’s whole life in love, and one doesn’t joke with love. “Preparation to marriage” can’t be defined by three or four conferences given in the parish. No, this isn’t preparation: this is a feigned preparation. And the responsibility of the one who does this falls on him: on the parish priest, on the Bishop who allows these things. The preparation must be mature and time is needed. It’s not a formal act: it’s a Sacrament, but it must be prepared for with a true catechumenate.

 

따라서, 부부생활에의 부름은 관계의 질과 그것을 확인하는 약혼의 시기에 대한 신중한 분별을 요구합니다. 혼인성사에 응하기 위해, 약혼한 커플은 그들 관계 안에 주님의 손길이 있음에 대한 확신이 키워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앞서가시고, 그들과 함께 가십니다. 또한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언제나 충실할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들은 좋은 의지만을 가지고, 또는 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만을 가지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에나 아플 때에도늘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할 것이라고 충실을 약속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신실한 주님의 사랑의 견고한 바탕에 기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혼인성사를 받기 전, 세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저는 교리교육의 시기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 안에서 그들의 삶을 바치는 것이고, 사랑으로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의 준비는 교구에서 실시하는 3-4번의 교육으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준비가 아닙니다. 이것은 진정한 준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시하는 이에 대한 책임은 교구의 사제에게, 이런 것들을 허락하는 주교에게 있습니다. 준비는 반드시 성숙해야 하며,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사이지만, 진정한 교리교육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Fidelity, in fact, is a way of being, a style of life. One works with loyalty, one speaks with sincerity, one remains faithful to the truth in one’s thoughts, in one’s actions. A life woven with fidelity is expressed in all the dimensions and leads to being faithful and reliable men and women in every circumstance.

 

사실상 충실함은 존재의 방식이고, 삶의 방식입니다. 인간은 충성으로 일하고, 성실하게 말하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진실성에 충실함을 보입니다. 충실함으로 짜여진 삶은 모든 차원에서 표현되며, 모든 상황에서 충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되게 합니다.

 

However, to come to such a life, our human nature isn’t enough, the fidelity of God must enter our existence and infect us. This Sixth Commandment calls us to turn our gaze to Christ, who with His fidelity can remove from us an adulterous heart and give us a faithful heart. In Him, and only in Him, there is love without reservations and afterthoughts, complete donation without parenthesis and the tenacity of acceptance to the end.

 

그러나, 이러한 삶에 이르기에 우리 인간의 본성은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 안에 주님의 충실함이 들어와, 우리에게 침투되어야 합니다. 이 여섯 번째 계명은 우리에게, 자신의 충실함으로 우리의 불순한 마음을 없애시고, 충실한 가슴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구심과 생각의 변화가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조건 없는 온전한 기부와 끝까지 수용하는 끈기가 있습니다.

 

Our fidelity stems from His Death and Resurrection, from His unconditional love stems constancy in relationships. Communion among us, and the ability to live our bonds in fidelity, stem from communion with Him, with the Father and with the Holy Spirit.

 

우리의 충실함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관계의 지속이 싹트는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생겨납니다. 우리 사이의 교감과, 충실함 안에서 우리의 유대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의 교감에 있습니다.

 

[Original text: Italian] [ZENIT’s translation by Virginia M. Forrester]

 

한글번역: 황민영 줄리아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