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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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10.14 18:09 1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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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on October 10,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oday’s catechesis is dedicated to the Fifth Commandment: You shall not kill. The fifth Commandment is do not kill. We are now in the second part of the Decalogue, which concerns relations with one’s neighbour. And this Commandment, with its concise and categorical formulation, stands as a wall of defense of the basic value in human relations. And what is the basic value in human relations? The value of life.[1] Therefore, do not kill.

 

교황님의 교리 (2018.10.10.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의 교리는 다섯 번째 계명인 살인해서는 안 된다에 대한 것입니다.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은 간결하고 명료한 형식으로 인간관계의 기본 가치를 지키는 장벽을 표방합니다. 인간관계의 기본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의 가치이고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It could be said that all the evil done in the world is summarized in this: the contempt for life. Life is attacked by wars, by organizations that exploit man we read in the newspapers or see in the television news so many things by speculation on creation and the disposable culture, and by all systems that subject human existence to calculations of opportunity, while a scandalous number of people live in a state unworthy of man. This is to scorn life, namely, in some way to kill.

 

세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악이 이것에 요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멸입니다. 생명은 전쟁을 통해, 인간을 착취하는 조직에 의해 공격받습니다. 우리는 신문에서, 텔레비전 뉴스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읽고 봅니다. 생명은 창조에 대한 의문과 일회성 문화에 의해, 인간의 존재를 기회의 계산으로 간주하는 모든 시스템에 의해 공격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를 유린당한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 살인하는 것의 한 형태입니다.

 

A contradictory approach also permits the suppression of human life in the maternal womb in the name of safeguarding other rights. But how can an act that suppresses innocent and defenseless budding human life be therapeutic, civil or simply human? I ask you: it is right to do away with a human life to solve a problem? Is it right to hire a hitman to solve a problem? One cannot do this, it is not right to do away with a human being, albeit small, to solve a problem. It is like hiring a hitman to solve a problem.

 

모순된 접근은 또한, 다른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산모의 자궁에 있는 인간의 생명을 억압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러나 무고하고 방어할 수 없는 피어나는 인간 생명을 억압하는 행동이 어떻게 치료적이고, 문명적이며 또한 인간적일 수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생명을 내버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문제해결을 위해 암살자를 고용하는 것이 옳습니까?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을지라도 인간을 제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문제해결을 위해 암살자를 고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Where does all this come from? Where do violence and the refusal of life come from? From fear. Indeed, the acceptance of the other is a challenge to individualism. Let us think, for example, of when we discover that a nascent life is the bearer of a disability, even a serious one. The parents, in these dramatic cases, need true closeness, true solidarity, to face reality overcoming the understandable fears. Instead, they often receive hasty advice to interrupt the pregnancy, which is a figure of speech: “interrupt the pregnancy” means to “do away with” someone, directly.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폭력과 생명에 대한 거부는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두려움입니다. 실제로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주의에서는 도전입니다. 예를 들어 잉태한 태아에게 장애, 심지어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 부모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직면하기 위해 진정한 친밀함, 진정한 연대감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임신에 간섭하는 조급한 조언을 듣습니다. 임신을 간섭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내버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A sick baby is like any needy person on earth, as an elderly man who needs help, as so many poor that struggle to go on: he or she who appears as a problem is, in reality, a gift of God that can draw me out of egocentrism and make me grow in love. Vulnerable life points out to us the way out, the way to save us from an inward-looking existence and to discover the joy of love. And I would like to pause here to thank, to thank so many volunteers, to thank the strong Italian voluntary work, which is the strongest I’ve known. Thank you.

 

병든 아기는 도움이 필요한 노인과 같이,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많은 가난한 이들과 같이 지구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문제처럼 보이는 아기는 사실상 나를 자기중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게 하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취약한 생명은 우리에게 내 안을 바라보는 존재에서 우리를 구하여, 나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기쁨과 사랑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여기서 저는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싶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단단한, 이탈리아의 강한 자원봉사 노력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And what leads man to reject life? It’s the idols of this world: money better to take this away from our midst, because it will cost , power <and> success. These are erroneous parameters to value life. What is the only authentic measure of life? It is love, the love with which God loves it! The love with which God loves life: this is the measure the love with which God loves every human life.

 

그러면, 인간이 생명을 거부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우상인 돈, 권력, 그리고 성공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들은 생명을 저울질하는 잘못된 기준입니다. 생명의 유일하고 진정한 척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입니다.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같은 그 사랑, 이것이 척도입니다. 모든 인간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같은 그 사랑 입니다.

 

In fact, what is the positive meaning of the Word “Do not kill”? That God is “lover of life,” as we heard a short while ago in the biblical Reading.

 

사실상, “살인하지 말라의 긍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조금 전 성경 강독에서도 들었듯이, 하느님이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The secret of life was revealed by the way the Son of God treated it, who made Himself man to assuming, on the cross, rejection, weakness, poverty and pain (Cf. John 13:1). In every sick child, in every weak elderly man, in every desperate migrant, in every fragile and threatened life Christ is seeking us (Cf. Matthew 25:34-46), He is seeking our heart, to unlock for us the joy of love.

 

생명의 비밀은 하느님의 아들이 생명을 대한 방식에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오르시고, 거절, 약함, 가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cf. 요한 13:1). 모든 병든 아이들에게서, 모든 연약한 노인에게서, 모든 절실한 이민자들에게서, 모든 취약하고 위협받는 생명들에게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찾으십니다(cf. 마태 25:34-46). 예수님은 사랑의 기쁨으로 우리를 열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찾으십니다.

 

It’s worthwhile to receive every life because every man is worth the Blood of Christ Himself (Cf. 1 Peter 1:18-19). One can’t scorn what God has so loved!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갖기에, 모든 생명을 받는 것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cf. 베드로 1:18-19). 하느님께서 그리 사랑하신 것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We must say to the men and women of the world: don’t scorn life! The life of others, but also one’s own, because for it also the Commandment “Do not kill” is true. So many young people are told: don’t scorn your existence! Stop rejecting God’s work! You are a work of God! Don’t underestimate yourself, don’t scorn yourself with addictions that will ruin you and lead you to death!

 

우리는 세상의 남성과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생명을 경멸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생명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도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살인하지 마라의 계명이 또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의 존재를 경시하지 말아라! 하느님이 만드신 것을 거부하지 말아라! 너는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다! 너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스스로를 망치고 죽음으로 이끌 중독으로 자신을 경멸하지 말아라

 

No one should measure life according to the deceits of this world, but each one should accept himself and others in the name of the Father who has created us. He is “lover of life”: this is beautiful. “God is lover of life.” And we are all so dear to Him that He sent His Son for us. The Gospel says, in fact: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세상의 기만에 속아 생명의 가치를 측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 그리고 타인을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에게 너무도 소중하여, 하느님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Original text: Italian] [ZENIT’s translation by Virginia M. Forrester]

 

한글 번역: 황민영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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