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

2018.10.14 18:08 260 0


Pope's Address Before the Angelus (September 30,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his Sunday’s Gospel (Cf. Mark 9:38-43.45.47.-48) presents to us one of those very instructive particulars of Jesus’ life with His disciples. They had seen a man, who wasn’t part of the group of Jesus’ followers, casting out devils in Jesus’ name, and so they wanted to forbid him. With the typical zealous enthusiasm of young people, John referred the incident to the Master seeking His support. However, Jesus answers on the contrary: “Do not forbid him; for no one who does a mighty work in my name will be able soon after to speak evil of me. For he that is not against us is for us” (vv. 39-40).


교황님의 삼종기도 전 강론 (2018.9.30. 주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일의 복음은 (마르코 9,38-43, 45, 47-48) 제자들과 함께 한 예수님 삶에서 아주 교훈적인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이의 전형적인 질투 섞인 열정으로 요한은 주인이신 예수님께 이것을 고하고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그 반대였습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마르코 9,39-40)


John and the other disciples reflect an attitude of closure in face of an event that doesn’t fit in their schemes, in this case the action, though good, of a person “outside” the circle of followers. Instead, Jesus seems very free, fully open to the freedom of the Spirit of God, who isn’t limited in His action by some border or enclosure. Jesus wishes to educate His disciples, also us today, to this interior freedom.


요한과 다른 제자들은 그들의 계획에 맞지 않는 사건, 이 경우, 좋은 일이지만 제자들 그룹 의 사람이 행한 행위 앞에서 폐쇄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경계나 울타리에 제한 받지 않으시는 성령의 자유로움에 온전히 마음을 여시어 매우 자유로우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 내적 자유에 대해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It does us good to reflect on this episode, and to make an examination of conscience. The attitude of Jesus’ disciples is very human, very common, and we can find it in the Christian communities of all times, probably also in ourselves. Rather, in good faith, with zeal one would want to protect the authenticity of a certain experience, especially charismatic, protecting the founder or leader from false imitators. However, at the same time there is sort of fear of a “concurrence” and this is awful: the fear of a concurrence , that someone can draw new followers, and then one is unable to appreciate the good that others do: it’s not right because “he’s not one of ours,” it’s said. It’s a form of self-reference. Here, rather, is the root of proselytism. And the Church Pope Benedict said doesn’t grow by proselytism; it grows by attraction, namely, it grows by the witness given to others with the strength of the Holy Spirit.


이 사건을 묵상하고 양심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좋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태도는 매우 인간적이고 아주 일반적이고, 크리스천 공동체에서 항상 볼 수 있고, 아마 우리 자신들 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선의의 믿음과 열정으로 어떤 체험, 특히 은사적인 체험의 진정성을 보호하고, 거짓 모방자로부터 체험자와 지도자를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종의 일치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끔찍합니다. 일치의 두려움 - 어떤 사람이 새로운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선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옳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개종주의 뿌리가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가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개종권유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매력으로 성장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증거에 의해서 성장합니다.


God’s great freedom in giving Himself to us is a challenge and an exhortation to change our attitudes and our relationships. It’s the invitation that Jesus addresses to us today. He calls us not to think according to the categories of “friend/enemy,” “we/them.” Who is inside? Who is outside,” “mine/yours,” but to go beyond, to open our heart to be able to recognize God’s presence and action also in unusual and unforeseen realms, and in persons that are not part of our circle. It’s about being more attentive to the genuineness of the good, of the beautiful and of the true that is done, not about the name and provenance of the one who does it. And as the remaining part of today’s Gospel suggests instead of judging others, we must examine ourselves, and “cut” without compromises all that can scandalize the persons weakest in the faith.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위대한 자유는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관계를 바꾸라는 요구이며 간곡한 권고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초청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구/,” “우리/그들,” “누가 우리 편인가? 누가 남의 편인가?” “내것/네것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어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정상이 아닌 예상치 않았던 영역에서도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하심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라고 부르십니다. 그것은 선과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주의를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행한 사람, 그 출처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그 행위 자체의 진실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오늘 복음의 나머지 부분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에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협 없이 믿음에 해를 끼치는 모든 것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May the Virgin Mary, model of docile reception of God’s surprises, help us to recognize the signs of the Lord’s presence in our midst, discovering Him wherever He manifests Himself, also in the most unthinkable and unusual situations. May she teach us to love our community without jealousies and closures, always open to the vast horizon of the action of the Holy Spirit.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모범이신 동정 마리아여, 저희를 도우셔서 저희가 우리 가운데에, 어느 곳이든 주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곳에서, 그분을 발견하게 하소서. 그리고 가장 예기치 못한 곳, 가장 정상이 아닌 곳에서 조차 그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성모님께 청하오니 저희를 도우셔서 저희가 저희의 공동체를 질투와 폐쇄 없이 사랑하고, 항상 성령님 역사의 광대한 지평에 마음을 활짝 열도록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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