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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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

최고관리자
2018.09.27 14:21 3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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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Address Before the Angelus (September 23,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Today’s first reading, from the Book of Wisdom speaks of the persecution of the righteous, those whose “mere presence” annoys the ungodly. The ungodly are described as those who oppress the poor, who have no compassion for the widow and show no respect to the elderly (cf. 2:17-20). The ungodly claim to believe that “power is the norm of justice”. They dominate the weak, use their power to impose a way of thinking, an ideology, a prevailing mindset. They use violence or repression to subject those who simply by their honest, straightforward, hardworking and everyday life show that a different kind of world, a different kind of society, is possible. The ungodly are not content with doing anything they like, giving into their every whim; they do not want others, by doing good, to show them up for who they are. In the ungodly, evil is always trying to destroy good.

 

교황님의 삼종기도 전 강론 (2018.9.23. 주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제1독서, 지혜서 2, 12, 17-20, 에 악인들이 의로운 사람들, 그들의 단순한 존재가 그들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악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과부를 동정하지 않고, 노인들에게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12-17) 악인들은 권력이 정의의 기준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생각, 주의, 사고방식을 강요합니다. 그들은 폭력과 억압으로 의로운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단지 정직, 근면, 그리고 매일의 다정한 생활로 다른 세상,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악인들은 변덕스럽고 그들이 좋아하는 일은 어느 것이든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악인들 안에 악은 항상 선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Seventy-five years ago, this nation witnessed the final destruction of the Vilnius Ghetto; this was the climax of the killing of thousands of Jews that had started two years earlier. As we read in the Book of Wisdom, the Jewish people suffered insults and cruel punishments. Let us think back on those times, and ask the Lord to give us the gift of discernment to detect in time any recrudescence of that pernicious attitude, any whiff of it that can taint the heart of generations that did not experience those times and can sometimes be taken in by such siren songs.

 

75년 전에 이 나라, 리투아니아, 는 수도인 빌니우스의 유태인 거주지역의 마지막 파괴를 지켜봤습니다. 이것은 2년 전에 시작됐던 수천 명의 유태인 학살의 정점이었습니다. 지혜서에서 읽은 것처럼, 유태인들은 모욕과 잔인한 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며 주님께 그런 치명적인 태도의 재발을 적시에 알아보는 선물을 청합시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세대들, 유혹의 말에 빠져들 수 있는 세대들의 가슴을 더럽힐 수 있는 그런 끔찍한 태도의 조짐을 식별할 수 있는 선물을 청합시다.

 

Jesus in the Gospel tells us of a temptation of which we have to be very careful: the desire for primacy and domination over others, which can dwell in every human heart. How often has it happened that one people considers itself superior, with greater acquired rights, with more privileges needing to be preserved or gained. What is the antidote that Jesus proposes when this impulse appears in our heart or in the heart of any society or country? To be the last of all and the servant of all; to go to the place where no one else wants to go, where no one travels, the furthest peripheries; to serve and come to know the lowly and the rejected. If power had to do with this, if we could allow the Gospel of Jesus Christ to reach the depths of our lives, then the “globalization of solidarity” would be a reality. “In our world, especially in some countries, different forms of war and conflict are re-emerging, yet we Christians remain steadfast in our intention to respect others, to heal wounds, to build bridges, to strengthen relationships and to ‘bear one another’s burdens” (Gal 6:2)” (Evangelii Gaudium, 67).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우리가 매우 조심해야 할 유혹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욕심, 즉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얼마나 권력과 특권을 가지고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권력과 특권은 더 가져야 하고 더 강화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사회 또는 나라의 가슴에 이런 충동이 생길 때의 해결책으로 예수님께서 제안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꼴찌가 되고, 모두의 종이 되고, 다른 이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으로 가고, 더 먼 주변으로 가고, 낮은 사람들, 그리고 거부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과 이것이 상관이 있다면, 우리 생활 깊숙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연대의 세계화는 실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에, 특별히 어떤 나라에서는 다른 형태의 전쟁과 갈등이 다시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가교의 역할을 하고, 관계를 강화하고, ‘서로 남의 짐을 져 줄의도를 확고히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6,2)” (복음의 기쁨, 67)

 

Here in Lithuania, you have a hill of crosses, where thousands of people, over the centuries, have planted the sign of the cross. I ask you, as we now pray the Angelus, to beg Mary to help us all to plant our own cross, the cross of our service and commitment to the needs of others, on that hill where the poor dwell, where care and concern are needed for the outcast and for minorities. In this way, we can keep far from our lives and our cultures the possibility of destroying one another, of marginalizing, of continuing to discard whatever we find troublesome or uncomfortable.

 

여기 리투아니아에는 수천 명이 수백 년에 걸쳐서 십자가를 심은 소위 십자가의 언덕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이제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마리아께 청하여 우리 모두가 가난한 이들이 사는 언덕에, 버려지고, 낙오된 사람들을 위한 염려와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고 청합시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과 문화를 서로를 파괴시키고, 소외시키고, 불편하고 귀찮은 것을 계속해서 버리는 그런 성향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Jesus puts a little child in our midst, at the same distance from each of us, so that all of us can feel challenged to respond. As we remember the “yes” spoken by Mary, let us ask her to make our “yes” as generous and fruitful as hers.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우리 각자로부터 같은 거리에 어린아이를 두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응답해야 할 의무를 느낍니다. 마리아께서 답하신 를 기억하며 마리아께 우리의 가 성모님의 응답처럼 자비롭고 열매를 맺는 이도록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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