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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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9.27 14:20 12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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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Sep 19, 2018)

 

In the journey within the Ten Words, we come today to the Commandment on the father and the mother. It talks about the honor due to parents. What is this “honor”? The Hebrew term indicates the glory, the value, literally the “weight,” the consistency of a reality. It’s not a question of exterior ways but of truth. In the Scriptures, to honor God means to recognize His reality, to reckon with His presence. This is expressed also with rites, but above all it implies to give God the just place in one’s existence. Therefore, to honor the father and the mother means to recognize their importance also with concrete acts, which express dedication, affection and care. However, it’s not only about this.

 

교황님의 교리 (2018.9.19. 일반접견)

십계명의 여정에서, 오늘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계명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부모에 대한 공경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공경(honor)’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 용어로는 영광, 가치, 온전한 무게’, 현실의 일관성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외적인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 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을 공경한다(honor)는 것은 주님의 실재를 인식하고, 주님의 존재 안에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식에서도 표현되지만, 무엇보다 하느님께 개인의 존재 안에 꼭 맞는 장소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한다는 것은(honor) 헌신과 애정, 보살핌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부모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The Fourth Word has a characteristic: it’s the Commandment that contains an outcome. It says, in fact: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as the Lord your God commanded you; that your days may be prolonged, and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in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Deuteronomy 5:16). To honor one’s parents leads to a long happy life. The word “happiness” in the Decalogue appears only in connection with the relationship with parents.

 

결과를 포함하는 계명인, 네 번째 계명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하는 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고 잘될 것이다”(신명기 5:16).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이끕니다. 십계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실 때에만 등장합니다.

 

This age-old wisdom states what the human sciences were able to elaborate only little more than a century ago: which is that the imprint of childhood marks a lifetime. It can often be easy to understand if someone has grown up in a healthy and balanced environment, but equally one can perceive if a person comes from experiences of abandonment or violence. Our childhood is somewhat like indelible ink; it’s expressed in tastes, in ways of being, even if some try to hide the wounds of their origins.

 

이 오래된 지혜는 인간의 과학이 약 한 세기 전 즈음에야 밝혀낼 수 있었던, 어린 시절 각인된 것이 평생을 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에도 이해하기 쉽지만, 방임과 폭력의 경험을 한 사람을 보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지울 수 없는 잉크와 같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 상처에 대해 숨기려 할지라도, 취향으로, 존재의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However, the Fourth Commandment says even more. It doesn’t speak of the parents’ goodness; it doesn’t require that fathers and mothers be perfect. It speaks of an act of children, regardless of the parents’ merits, and it says an extraordinary and liberating thing: even if not all parents are good and not all childhoods are serene, all children can be happy, because the attainment of a full and happy life depends on the just recognition of one who has brought us into the world.

 

그러나, 네 번째 계명은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여기서, 부모의 선함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완벽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부모의 공로에 관계없이 아이의 행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특별하고 해방적인 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모든 부모가 선하지 않고, 모든 유년기가 평온하지 않더라도, 모든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성취하는 것은 우리를 세상에 데려오신 분을 그저 인식하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We think of how this Word can be constructive for so many young people that come from histories of pain, and for all those that have suffered in their youth. Many Saints and very many Christians lived, after a painful childhood, a luminous life because, thanks to Jesus Christ, they were reconciled with life. We think of that youth Sulprizio, today Blessed and next month Saint, who at 19 finished his life reconciled with so many sorrows, so many things, because his heart was serene and he never disowned his parents. We think of Saint Camillus of Lellis, who from a disordered childhood built a life of love and service; of Saint Josephine Bakhita, who grew up in horrible slavery; or of Blessed Carlo Gnocchi, orphan and poor, and of John Paul II himself, marked by the loss of his mother at a young age.

 

고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유년기에 고통 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이 말씀이 어떻게 건설적일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 많은 성인들과,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스런 유년기 이후에 빛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선포되어 다음 달에 성인으로 시성되는 어린 술프리치오(Sulprizio)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너무나 많은 슬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19세에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가슴은 평온했고, 부모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성 가밀로(Saint Camillus of Lellis)를 떠올려 봅시다. 그는 힘든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사랑과 봉사의 삶을 건설했습니다.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Saint Josephine Bakhita)는 끔찍한 노예시절을 겪었고, 성인이 된 까를로 뇨끼(Carlo Gnocchi)는 고아였고, 가난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John Paul II)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Regardless of what history man comes from, by this Commandment he receives the direction that leads to Christ: in Him, in fact, the true Father is manifested, who offers us to be “born anew from on high” (Cf. John 3:3-8). The enigmas of our lives are illumined when we discover that God has always prepared us for a life as His children, where every act is a mission received from Him.

 

성장 역사에 상관없이, 이 계명에 의해 우리는 내면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는 방향을 안내 받습니다. 참된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게”(요한 3:3-8) 하십니다. 우리 삶의 수수께끼는 주님이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우리를 위해 준비해두셨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 풀립니다. 그러면 모든 행위는 주님에게 받은 사명입니다.

 

Our wounds begin to be potentialities when by grace we discover that the true enigma is no longer “why?” but “for whom?” has this happened to me. In view of what work has God forged me through my history? Here everything is reversed, everything becomes precious; everything becomes constructive. My experience, also sad and painful, in the light of love, how does it become for others, for whom, source of salvation? Then we can begin to honor our parents with the freedom of adult offspring and with the merciful acceptance of their limitations.[1]

 

참된 수수께끼가 이런 일이 나에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라는 것을 은총으로 발견할 때, 우리의 상처는 잠재력이 됩니다. 나를 어떻게 이끄시기 위해 주님이 나의 역사를 겪게 하셨을까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모든 것이 소중해집니다. 모든 것이 건설적이게 됩니다. 슬프고 고통스런 나의 경험이, 사랑의 빛 안에서 어떻게 구원의 원천이 되는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하면, 우리는 어른이 된 자녀로서의 자유로움으로, 부모의 한계에 대한 자비로운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Honor parents: they have given us life! If you have estranged yourself from your parents, make an effort and go back, go back to them, perhaps they are old . . . . They have given you life. And then, among us, there is the habit of saying awful things, also bad language . . . Please, never, never insult other [people’s] parents. Never! Never insult the mother; never insult the father. Never! Never! Take up this interior decision today: henceforth I will never insult someone’s mother or father. They gave him/her life! They must not be insulted.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그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멀어진다면, 다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십시오. 나이가 드셨을 테지만돌아가십시오. 그 분들이 여러분에게 삶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는 끔찍한 것들, 나쁜 말을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절대, 절대, 다른 이의 부모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절대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를, 아버지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절대 안됩니다! 절대! 오늘의 내적 결심을 따르십시오. 오늘 이후로, 나는 절대 다른 이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모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사람에게 삶을 주셨습니다!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This wonderful life is offered to us, not imposed: to be born anew in Christ is a grace to receive freely (Cf. John 1:11-13), and it’s the treasure of our Baptism in which,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only one is our Father, that of Heaven (Cf. Matthew 23:9; 1 Corinthians 8:6; Ephesians 4:6). Thank you

 

이 놀라운 삶은 우리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은총입니다(cf. 요한복음 1:11-13).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업적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뿐인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세례의 보화입니다(cf. 마태복음 23:9; 1코린 8:6; 에페 4:6). 고맙습니다!

 

[Original text: Italian] [ZENIT’s translation by Virginia M. Forrester]

 

한글 번역: 황민영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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