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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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9.01 11:23 1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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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on August 22,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Continuing the catecheses on the Commandments, today we reflect on the Commandment “You shall not tak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in vain” (Exodus 20:7). We rightly read this Word as an invitation not to offend God’s name and to avoid using it inopportunely. This clear meaning prepares us to reflect further on these precious words, of not using the name of God in vain inopportunely. Let us listen to them better. The version “”You shall not take” translates an expression that means literally, in Hebrew and in Greek, “Do not take upon yourself, do not bear.”

 

교황님의 교리 (2018.8.22.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십계명에 대한 교리를 이어가며, 오늘은 탈출기의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된다”(탈출기 20:7) 구절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이 구절을 주님의 이름을 어긋나게 사용하지 않고, 부적절한 순간에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이러한 명확한 의미는 주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 부적절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해줍니다. 더 깊이 들어봅시다. “불러서는 안된다로 번역된 것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맡아서는 안된다, 견뎌서는 안된다를 의미합니다.

 

The expression “in vain” is clearer and it means: “void, vainly.” It refers to an empty shell, to a form deprived of content. It’s the characteristic of hypocrisy, of formalism and of lies, of using words or using the name of God, but emptily, without truth.

 

부당하게라는 표현은 좀 더 명확한데, 이것은 헛되게, 헛되이를 의미합니다. 내용이 빈약한 빈 껍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위선과, 형식주의와, 거짓과, 공허하게 진정성 없이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의 특성입니다.

 

A name in the Bible is the profound truth of things and especially of people. A name often represents a mission. For instance: Abraham in Genesis (Cf. 17:5) and Simon Peter in the Gospels (Cf. John 1:42) received a new name to point out the change of direction of their life. And to truly know the name of God leads to the transformation of one’s life: from the moment Moses knows the name of God his story changes (Cf. Exodus 3:13-15).

 

성경에서의 이름은 사물과, 특히 사람에 대한 심오한 진리입니다. 이름은 흔히 사명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아브라함(cf. 17:5)과 요한복음의 시몬 베드로(요한 1:42)는 삶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 받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진정으로 아는 것은 삶의 변화를 이끕니다. 모세가 주님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이야기가 변하였습니다(cf. 탈출기 3:13-15)

 

In the Hebrew rites, the name of God is proclaimed solemnly on the Day of the Great Pardon, and the people are forgiven because, through the name, one is in contact with very life of God, who is mercy.

 

히브리 의식에서, 주님의 이름은 거룩한 대 사면의 날에 엄숙하게 선포되었고, 이름을 통해 자비로우신 주님의 생명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용서받았습니다.

 

So “to take upon yourself the name of God” means to assume upon ourselves His reality, to enter into an intense relationship, into a close relationship with Him. For us Christians, this Commandment is a reminder to remember that we ar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Spirit,” as we affirm every time we make the sign of the cross on ourselves, to live our daily action in heartfelt and real communion with God, namely, in His love. And on this <question>, of making the sign of the cross, I would like to confirm once again: teach the children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Have you seen how children make it? Children are told: “Make the sign of the cross,” and they do something that they don’t know what it is. They don’t know how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Teach them to make it in the name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It’s a child’s first act of faith. It’s a task for you, a task to do: to teach children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을 맡는다는 것은 주님의 존재에 책임을 다하는 것, 주님과 강한 관계를 맺는 것,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계명은, 우리가 충만함과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 안에서 즉, 주님의 사랑 안에서 늘 생활하기 위해 성호를 그을 때마다 확인하는 것과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상기시켜줍니다. 성호를 긋는 것을 설명한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성호를 긋는 것을 가르치십시오.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이들은 성호를 그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합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성호를 그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십시오. 이것은 아이들이 행하는 첫 번째 신앙행동 입니다. 아이들에게 성호를 긋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임무입니다.

 

We can ask ourselves: is it possible to take upon oneself the name of God in a hypocritical way, as a formality, in a vacuum? Unfortunately, the answer is positive: yes, it’s possible. One can live a false relationship with God. Jesus said it of those Doctors of the Law; they did things, but they didn’t do what God wanted. The talked about God, but they didn’t do the Will of God. And the counsel that Jesus gives is: “Do what they say, but not what they do.” One can live a false relationship with God, as those people. And this Word of the Decalogue is in fact an invitation to a relationship with God that isn’t false, <that is> without hypocrisy, a relationship in which we entrust ourselves to Him with all that we are. At the end, until the day in which we don’t risk existence with the Lord, experiencing that life is found in Him, we only engage in theories.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위선적으로, 형식적으로, 공허하게 주님의 이름을 맡는 것이 가능할까?’ 불행히도, 그 대답은 입니다.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주님과 거짓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박사들에게도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일을 하였지만,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말하였지만, 주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주신 충고는 저들이 말하는 것을 해라, 하지만 저들이 행하는 것은 하지 말아라였습니다.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과 같이 주님과 거짓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이 구절은 사실상 거짓되지 않은 주님과의 관계로의 초대입니다. , 위선 없이 주님에게 우리 전부를 위탁하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주님과의 공존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날이 오기 전까지, 주님 안에서 삶이 발견되는 것을 경험하기 전까지, 이론적으로 신앙활동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This is the Christianity that touches hearts. Why are Saints so able to touch hearts? Because Saints don’t just talk but move! Our heart is moved when a holy person speaks to us, says things to us. And they are able, because in the Saints we see what our heart profoundly desires: authenticity, true relationships, <and> radicalism. And this is also seen in those “next-door saints: who are, for instance, the many parents that give their children the example of a coherent, simple, honest and generous life.

 

이것은 마음을 울리는 신앙입니다. 성인들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인들은 말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이가 우리에게 말할 때, 이야기들을 전해줄 때, 움직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인 안에서 우리가 마음 깊이 욕망하는 것, 진정성, 참된 관계, 근본주의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이웃집 성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일관되고, 단순하면서도 정직하고 관대한 삶의 모범을 보이는 많은 부모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말입니다.

 

If Christians are multiplied who taken upon themselves the name of God without falsity thus practicing the first question of the Our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the proclamation of the Church is more heeded and more credible. 444If our concrete life manifests the name of God, we see how beautiful Baptism is and what a great gift the Eucharist is! as the sublime union there is between our body and the Body of Christ: Christ in us and we in Him! United! This isn’t hypocrisy; this is truth. This isn’t to speak or pray as a parrot, this is to pray with the heart, to love the Lord.

 

만약 거짓없이 주님의 이름을 맡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게 되어, 주님의 기도의 첫 구절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다를 실천한다면, 교회의 찬송에 더 귀기울이게 되고 더 신뢰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실제적 삶이 주님의 이름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세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성찬례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과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되는 숭고한 결합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주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은 앵무새처럼 말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From the Cross of Christ and thereafter, no one can be scornful of himself and think badly of his existence no one and never! No matter what we have done, because the name of each one of us is on Christ’s shoulders, He carries us! It’s worthwhile to take the name of God upon ourselves because He has taken charge of our name until the end, also of the evil that is in us. He has taken charge of it to forgive us, to put His love in our heart. Therefore in the Commandment God proclaims: “take Me upon yourself, because I have taken you upon myself.”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 아무도 그를 경멸하지 못하였고, 그의 존재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도, 절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였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있기에, 그분이 우리를 이끄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맡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 이름을,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끝까지 맡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우리 마음에 사랑을 넣어주시기 위해, 이것을 맡으십니다. 십계명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름으로 가거라, 내가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

 

Anyone can invoke the holy name of the Lord, who is faithful and merciful Love, in whatever situation he finds himself. God will never say “no” to a heart that invokes Him sincerely. And we return to the task to do at home: teach the children to make well the sign of the cross.

 

누구라도 충실하고 자비로운 사랑의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찾고자 하면 부를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부르는 마음에, 주님은 절대 아니오라고 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집에서 우리가 해야 할 임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성호를 긋는 것을 가르치십시오.

 

[Original text: Italian] [[ZENIT’s translation by Virginia M. Forrester}

 

한글 번역: 황민영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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