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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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

최고관리자
2018.07.21 10:54 2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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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Address Before the Angelus (July 15,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oday’s Gospel (Cf. Mark 6:7-13) recounts the moment in which Jesus sent the Twelve on mission. After having called them one by one by name, “to be with Him” (Mark 3:14), listening to His words and observing His healing gestures, now He calls them again “to send them out two by two” (6:7), to the villages where He was about to go. It’s a sort of “apprenticeship” for what they will be called to do, after the Lord’s Resurrection, wit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교황님의 삼종기도 전 강론 (2018.7.15. 주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복음 (마르코 6,7-13)은 예수님께서 12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어 가까이 오게 하시고, “함께 머물게 하시고” (마르코 3,14), 말씀을 경청하게 하시고, 치유하시는 모습을 관찰하게 하신 후에 이제 그들을 다시 불러 둘씩 짝을 지어 예수님께서 앞으로 방문하실 지방으로 파견하십니다.” (마르코 6,7) 그것은 주님의 부활 후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하도록 불림을 받을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입니다.

 

The evangelical passage pauses on the missionary’s style, which we can summarize in two points: the mission has a center; the mission has a face.

 

복음화 여정에서 선교사의 스타일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두 가지 요점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심 그리고 얼굴입니다.

 

The missionary disciple has first of all his center of reference, which is Jesus’ person. The account points it out using a series of verbs that have Him as subject “He called to Himself,” “He began to send them,” “He gave them authority,” “He charged them,” “He said to them” (vv. 7.8.10) so that the going and the labour of the Twelve seemed to radiate from a center, proposing again the presence and work of Jesus in their missionary action. This shows how the Apostles have nothing of their own to proclaim, or their own capacities to demonstrate, but they speak and act in as much as “sent,” in as much as messengers of Jesus.

 

선교를 떠나는 제자는 무엇보다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중심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오늘의 복음구절에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에 일련의 동사들이 나오는데, 이 동사들의 주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부르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한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7,8,9) 등으로서, 파견되는 12 제자들의 출발과 활동이 이 중심으로부터 발산되며, 이는 그들의 선교활동 안에 예수님의 현존과 역사하심이 있음을 뜻합니다. 이는 사도들이 자신들의 것은 아무것도 선포할 것이 없고, 자신들의 것은 아무것도 입증할 능력이 없으며, 다만 보내진 사람들로서 얘기하고 행동하고 예수님의 메신저로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This evangelical episode applies also to us, and not only to priests but to all the baptized, called to witness, in the different environments of life, the Gospel of Christ. And for us also, this mission is only authentic if it begins from its immutable center, which is Jesus. It’s not an initiative of individual faithful or of groups and even less so of large aggregations, but it’s the mission of the Church, inseparably united to her Lord. No Christian proclaims the Gospel on “his own,” but is only sent by the Church, which has received the mandate from Christ Himself. It is Baptism, in fact, which makes us missionaries. A baptized person who doesn’t feel the need to proclaim the Gospel, to proclaim Jesus, isn’t a good Christian.

 

이 복음 선포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사제들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들은 삶의 다양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도록 불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이 사명은 불변의 중심, 즉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진정한 선교입니다. 그것은 개별적 신자들 또는 단체 그리고 더욱이 대규모의 회중이 추진하는 일이 아니고, 바로 주님과 결합된 교회가 수행하는 사명입니다. 어떤 크리스천도 스스로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권한을 받은 교회로부터 파견될 뿐입니다. 사실 세례 때 우리는 선교사가 됩니다. 세례 받은 사람 중에 복음을 선포할 필요, 예수님을 선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좋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The second characteristic of the missionary’s style is, so to speak, a face, which consists in the poverty of means. His equipment responds to a criterion of sobriety. In fact, the Twelve are given the order to “take nothing for their journey except a staff; no bread, no bag, no money in their belts” (v. 8). The Master wants them free and light, without supports and without favors, certain only of the love of Him who sends them, strong only from His word, which they go to proclaim. The staff and the sandals are the pilgrims’ supplies because such are the messengers of the Kingdom of God, not omnipotent managers; not immovable functionaries; not divas on tour. We think, for instance, of this Diocese of which I am Bishop.

 

선교사 스타일의 두 번째 특징은 가난으로 이루어진 소위 얼굴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장비는 진지함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사실 12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지팡이 이외의 아무것도 - 식량도, 짐도,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명하셨습니다. (8) 주님께서 그들이 아무 지원과 호의 없이 자유롭고 가볍게, 다만 그들을 파견하신 분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들이 선포하기 위해 떠나는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힘을 얻어,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지팡이와 샌들은 순례자들의 필수품입니다. 그들은 하느님 왕국의 메신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능한 관리자가 아니고, 자리가 보장된 관료가 아니고, 여행 중에 있는 오페라 주연 가수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주교로 있는 로마 교구를 생각해봅시다.

 

We think of some Saints of this Diocese of Rome: Saint Philip Neri, Saint Benedict Joseph Labre, Saint Alessio, Saint Ludovica Albertini, Saint Frances of Rome, Saint Gaspare Del Bufalo and so many others. They weren’t functionaries or entrepreneurs, but humble laborers of the Kingdom. They had this face. And to this “face” belongs also the way in which the message is received: in fact, it could happen that it’s not received or heard (Cf. v. 11). This, too, is poverty: the experience of failure. Jesus’ experience, who was rejected and crucified, prefigures the destiny of His messenger. And it’s only if we are united to Him, dead and risen, that we succeed in finding the courage of evangelization.

 

로마교구에는 많은 성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성 필립보 네리,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성 알레시오, 성 루도비카 알베르티니, 로마의 성 프란치스코, 성 가스파레 델 버팔로 등입니다. 그들은 관료들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고, 다만 왕국의 겸손한 일꾼들입니다. 그들은 가난으로 대표되는 이 얼굴을 가졌었습니다. 얼굴에 메시지를 받는 방법이 속해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를 듣지도 받지도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또한 빈곤입니다. 그것이 실패의 경험입니다. 거부되고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의 체험이 그분의 메신저들의 운명을 예시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결합할 때에만 복음화선교의 용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May the Virgin Mary, first disciple and missionary of the Word of God, help us to take the message of the Gospel to the world, in humble and radiant exultance, beyond every rejection, incomprehension or tribulation.

 

첫 번째 제자이며 하느님 말씀의 선교사이신 동정 마리아여, 저희가 온갖 거부와 몰이해와 수난을 뛰어넘어, 겸손하고 빛나는 기쁨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세상에 선포하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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