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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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7.14 09:20 2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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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on June 27,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oday, this audience will take place as it did last Wednesday. In the Paul VI Hall there are many sick people, and to protect them from the heat, so they are more comfortable, they are there. But they will follow the audience via the maxiscreen, and we too with them, that is, there are not two audiences. There is just one. Let us greet the people in the Paul VI Hall. And we will continue to speak about the commandments which, as we have said, rather than commandments are God’s words to His people, so that it may journey well; they are the loving words of a Father. The ten Words begin like so: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Ex 20: 2). This beginning would appear foreign to the true and proper rules that follow. But it is not the case.

 

교황님의 교리 (2018.6.27.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접견은 지난 수요일과 같이 두 군데에서 행해집니다. 많은 환우들이 더위를 피하고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바오로 6세 홀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참여하고 있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여기 베드로 광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두 접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자 모두 서로에게 인사를 나눕시다. 지난주에 이어서 계명에 대한 교리를 계속하겠습니다. 지난주에 말했듯이 계명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말씀입니다. 10 가지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너희를 종의 땅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너희의 주 하느님이다.” (탈출기 20, 2) 이 시작은 그 후에 이어지는 진실 되고 적절한 규정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Why does God make this proclamation of Himself and of liberation? Because one arrives at Mount Sinai after crossing the Red Sea: the God of Israel first saves, then asks for trust.[1] Or rather: the Decalogue begins with God’s generosity. God never asks without giving first. Never. First He saves, first He gives, then He asks. This is our Father, our good God.

 

왜 하느님께서 자신과 해방에 대해 이런 선포를 하셨을까요? 한 사람이 홍해를 건넌 후에 시나이산에 도착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우선 구하시고, 신뢰를 청하십니다. 다르게 보면, 십계명은 하느님의 관대함으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먼저 주지 않으시고 청하지 않으십니다. 우선 하느님께서 주시고, 하느님께서 먼저 구하시고, 하느님께서 청하십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선하신 하느님이십니다.

 

And we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the first declaration: “I am the Lord, your God”. There is a possessive, there is a relationship, He belongs to us. God is not a stranger: He is your God. [2] This illuminates all the Decalogue and also reveals the secret of Christian action, because it is the same attitude of Jesus Who says: “As the Father has loved me, so I have loved you” (Jn 15: 9). Christ is the beloved of the Father and loves us with that love. He does not start from Himself, but from the Father. Often our works fail because we start out from ourselves and not from gratitude. And those who start out from themselves, where do they arrive? They arrive at themselves! They are incapable of going ahead, and turn back on themselves. It is precisely that selfish attitude that, joking, people say: “That person is an I, me with myself and for myself”. He starts out from himself and returns to himself.

 

우리는 첫 선포의 중요성을 이해합니다. “나는 너희의 주 하느님이다.” 여기에서 소유적, 관계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 속해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하느님이십니다. 이것은 십계명 전체를 조명하며 또한 크리스천 활동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와 같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요한복음 15,9)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사랑 받는 아들이시고 우리에게 그 사랑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십니다. 종종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들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도착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도착합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으로 되돌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이기주의적인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농담조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사람이 나다. 그 나는 나와 함께 나를 위한 나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Christian life is first and foremost a freely given response to a generous Father. Christians who follow only their “duties” complain of not having a personal experience with that God Who is “ours”. I must do this, this and thisOnly duties. But something is missing! What is the foundation of this duty? The foundation of this duty is the love of God the Father, Who first gives, then commands. To place the law before the relationship does not help the path of faith. How can a young person wish to be Christian, if we start out from obligations, commitments, consistency and not from liberation?

 

크리스천 삶은 무엇보다도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기꺼이 드리는 응답입니다. “의무만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우리의그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체험이 없다고 불만을 얘기합니다. 나는 이것을 해야 해, 그리고 저것도 해야 해...의무만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습니다. 이 의무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이 의무의 기초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먼저 주시고 청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관계성 앞에 율법을 놓는 것은 믿음의 길에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가 해방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의무, 약속, 일관성으로 시작한다면 어떻게 젊은이들이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But to be Christian is a journey of liberation! The commandments free you from your selfishness and they free you because there is the love of God that carries you forward. Christian formation is not based on the strength of will, but on the acceptance of salvation, of allowing oneself to be loved: first the Red Sea, then Mount Sinai. First salvation: God saves His people in the Red Sea; then on Sinai tells them what they must do. But the people know that they must do these things because they have been saved by a Father Who loves them.

 

그러나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자유의 여정입니다. 계명은 여러분을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여러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합니다. 크리스천 양성은 강한 의지를 기초로 하지 않고 구원을 받아들이는데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 받도록 허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홍해가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시나이 산입니다. 첫 번째가 구원입니다. 하느님께서 홍해에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시나이 산에서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하셨기 때문에 이 계명들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Gratitude is a characteristic trait of the heart visited by the Holy Spirit; to obey God one must first remember the benefits. As Saint Basil says, “Those who do not let those benefits fall into oblivion, are oriented towards good virtue and towards every work of justice” (Rule, 56). Where does all this lead us? To perform a memory test[3]: how many beautiful things has God done for each one of us! How generous is our heavenly Father. I would now like to propose a little exercise to you, in silence: each person answer in his or her own heart. How many beautiful things has God done for me? This is the question. In silence, each one of us, answers. How many beautiful things has God done for me? And this is God’s liberation. God does many beautiful things and frees us.

 

감사는 성령의 방문을 받은 마음이 갖는 특성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혜택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실리오 성인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그 혜택들이 망각에 빠지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선한 덕과 정의를 위한 모든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규정 56)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합니까? 기억의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느님께서 어떤 아름다운 일들을 하셨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가요? 여러분에게 약간의 연습을 하도록 제언합니다. 침묵 가운데 각자가 마음속으로 답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일을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셨나요? 이것이 질문입니다. 침묵 가운데 우리 각자가 답합니다. 나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일을 하셨나요? 이것이 하느님의 해방입니다. 하느님께서 많은 아름다운 일을 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And yet some may feel they have not yet had a true experience of God’s liberation. This can happen. It can be that one looks inwardly and finds only a sense of duty, a spirituality of servants, not sons. What can be done in this case? Like the chosen people did. The book of Exodus says: “The Israelites groaned in their slavery and cried out, and their cry for help because of their slavery went up to God. God heard their groaning and He remembered His covenant with Abraham, with Isaac and with Jacob. So God looked on the Israelites and was concerned about them. God thinks of me.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해방의 진정한 체험을 아직 못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마음속을 드려다 보면, 아들의 영이 아니나 의무감, 종의 영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선택 받은 백성이 했듯이 하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살이에서 통곡하였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 하느님께 올라갔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통곡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염려하시고 그들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생각하십니다.

 

The liberating action of God placed at the beginning of the Decalogue that is, the commandments is the answer to this lament. We do not save ourselves, by ourselves, but from us there comes a cry for help: “Lord, save me; Lord, show me the way; Lord, caress me; Lord, give me a little joy”. This is a cry for help. This depends on us: asking to be freed from selfishness, from sin, from the chains of slavery. This cry is important, it is prayer, it is awareness of that which is still oppressed and not freed in us. There are many things that are not freed in our soul. “Save me, help me, free me”. This is a beautiful prayer to the Lord. God awaits that cry, because He can and He wants to break our chains; God has not called us to life to remain oppressed, but to be free and to live in gratitude, obeying with joy He Who has given us so much, infinitely more than what we can give to Him. This is beautiful. May God always be blessed for all that He has done, that He does and will do in us!

 

십계명 앞에 하느님의 해방의 역사가 놓입니다. 그것이 계명이고 그것이 이 애통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움을 청하는 외침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길을 보여주십시오. 주님 저를 보듬어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조그만 기쁨을 주십시오. 이것이 도움을 청하는 외침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기주의, , 종의 사슬로부터 자유롭게 되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이 외침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 안에 아직도 자유롭지 않고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 안에 아직 많은 것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구해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외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슬을 끊으실 수 있고 끊으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억압받는 채로 지속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께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 우리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것에 비교해서 무한대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신 모든 것, 하고 계신 모든 것, 하실 모든 것에 대해 영원히 축복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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