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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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6.27 12:02 1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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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General Audience on June 20,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his audience takes place in two places: we are here in the square, and in the Paul VI Hall there are more than 200 sick people who follow via the maxiscreen. All together we form a community. Let us greet those in the Hall with an applause.

 

교황님의 교리 (2018.6.20.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접견은 두 군데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곳 광장에 있고 바오로 6세 홀에는 200 명이 넘는 환우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환호로써 인사합시다.

 

Last Wednesday we began a new cycle of catechesis, on the commandments. We have seen that the Lord Jesus did not come to abolish the Law, but to fulfil it. But we must understand this perspective better.

 

지난 주 수요일에 우리는 새로운 주제, 즉 계명에 대한 교리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러 오지 않으시고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점을 더 잘 알아야겠습니다.

 

In the Bible the commandments do not exist autonomously, but are part of a relationship. The Lord Jesus did not come to abolish the Law, but to bring it to fulfilment. And there is that relationship, of the Covenant[1] between God and His People. At the beginning of Chapter 20 of the Book of Exodus we read and this is important “And God spoke all these words” (v. 1).

 

성경에 계명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관계성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지 않으시고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거기에 관계성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약속의 관계성이 있습니다. 탈출기 20장의 시작에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탈출기 20,1)

 

It appears to be an opening like any other, but nothing in the Bible is banal. The text does not say, “And God spoke these commandments”, but “these words”. The Jewish tradition always calls the Decalogue “the ten Words”. And the term “Decalogue” is intended to say precisely this. And yet they have the form of laws, they are objectively commandments. Why, then, does the holy Author use, right here, the term “ten Words”? Why? And why not “ten commandments”?

 

보통 시작에 나오는 상투적인 내용 같지만 성경 안에는 절대로 상투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본문에 하느님께서 모든 계명을 말씀하셨다라고 되어 있지 않고 모든 말씀을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전승은 항상 십계명을 열 가지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정확한 십계명이란 용어의 의도입니다. 그렇지만 열 가지의 말씀은 규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객관적으로 계명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저자는 바로 여기에 “10 가지 말씀이란 용어를 쓰고 있을까요? “10 가지의 계명이 아니고 “10 가지의 말씀이라고 쓰고 있을까요?

 

What difference is there between a command and a word? A command is essentially a communication that does not require dialogue. The word, on the other hand, is the essential means of relations as dialogue. God the Father creates by means of His Word, and His Son is the Word made flesh. Love is nurtured by words, like education or collaboration. Two people who do not love each other are not able to communicate. When someone speaks to our heart, our loneliness comes to an end. A word is received, communication is given, and the commandments are words of God: God communicates Himself in these ten Words, and awaits our response.

 

계명과 말씀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계명은 기본적으로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소통입니다. 한 편, 말씀은 관계성의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대화도 관계성의 수단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그분의 아드님은 사람이 되신 말씀입니다. 사랑은, 교육과 협력과 같이, 말씀으로 자랍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은 소통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말을 할 때, 우리의 외로움은 사라집니다. 말씀은 받아들여지고, 소통은 주어지고, 계명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10가지의 말씀 안에 자신을 드러내시고 이제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It is one thing to receive an order, another to perceive that someone is trying to speak with us. A dialogue is much more than the communication of a truth. I can say to you: “Today is the last day of spring, it is hot for spring, but today is the last day”. This is truth, it is not dialogue. But if I say to you, “What do you think of this spring?”, I initiate a dialogue. The commandments are a dialogue. “Communication is carried out for the pleasure of speaking and for the real good that is communicated between those who wish each other well, by means of words. It is a good that does not consist in things, but in the same people who reciprocally give each other in dialogue” (cf. Apostolic Exhortation Evangelii gaudium, 142).

 

명령을 받는 일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우리와 얘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 있습니다. 대화는 사실의 소통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가 오늘은 봄의 마지막 날입니다. 봄치곤 덥지만 오늘이 봄의 마지막 날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대화가 아니고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께 이번 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얘기한다면, 저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계명들도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하는 즐거움을 수반하고 말을 통해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풍요롭게 합니다. 이것은 물건으로 이루어지는 풍요가 아니고, 대화로써 자신들을 나누는 사람들 안의 풍요입니다.”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 142 참조)

 

But this difference is not something artificial. Let us look at what happened at the beginning. The temptor, the devil, wishes to deceive the man and the woman on this point: he wants to convince them that God has forbidden them to eat the fruit of the tree of good and evil to keep them in submission. The challenge is precisely this: is the first rule that God gave to man the imposition of a despot who forbids and compels, or is it the care of a father who cares for his young and protects them from self-destruction? Is it a word or is it a command? The most tragic, among the many lies that the serpent tells Eve, is the suggestion of an envious deity: “But no, God is envious of you” and of a possessive deity “God does not want you to have freedom”. The facts show dramatically that the serpent lied (cf. Gen 2: 16-17; 3: 4-5), he made them believe that a word of love was a command.

 

그러나 이 차이는 인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맨 처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악마인 유혹자는 이 시점에서 최초의 남자와 여자를 속이려고 합니다. 그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을 종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 선악과를 금하셨다는 것을 확신시키길 원합니다. 도전은 바로 이겁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규정이 금지하고 강제하는 폭군의 강요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자녀들을 염려하고 자체적인 파멸로부터 보호하는 아버지의 돌봄인가요? 그것은 명령인가요 아니면 말씀인가요? 뱀이 이브에게 말한 많은 거짓 중에 가장 비극적인 것은 질투하는 신이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아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질투하신다.” - 그리고 소유욕이 강한 신이다 -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자유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사실 뱀이 극적으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악마는 결국 그들이 사랑의 말씀을 명령으로 믿도록 하였습니다.

Man faces this crossroads: does God impose things or does He take care of me? Are His commandments just a law, or do they contain a word, to care for me? Is God master or father? God is the Father: never forget this. Even in the worst situations, think that we have a Father Who loves us all. Are we subjects or offspring? This conflict, within or outside us, presents itself continually: a thousand times we must choose between the mentality of slaves or the mentality of sons. The commandment is that of a father, the word is that of a Father.

 

사람은 갈림길에 섭니다. 하느님께서 강요하실까 또는 나를 보호하실까? 그분의 명령이 그저 율법일까 아니면 나를 보호하는 말씀일까? 하느님께서는 주인이실까 아니면 아버지이실까?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종입니까 아니면 자녀입니까? 우리 안과 밖의 이 갈등은 계속적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는 종의 사고방식과 자녀의 사고방식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계명은 아버지의 계명이고 말씀 또한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The Holy Spirit is a Spirit of sons, He is the Spirit of Jesus. A spirit of slaves cannot but receive the Law in an oppressive way, and can produce two opposing results: either a life made up of duties and obligations, or a violent reaction of rejection. All Christianity is the passage from the letter of the Law to the Spirit that gives it life (cf. 2 Cor 3: 6-17). Jesus is the Word of the Father, not the Father’s condemnation. Jesus came to save, with His Word, not to condemn us.

 

성령께서는 아들의 영입니다. 그분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종의 영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계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상반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하나는 의무와 책무의 삶이거나 거부의 폭력적인 반응입니다. 기독교의 요체는 규정의 서간으로부터 그것에 생명을 주는 영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코린토 23,6-17 참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단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를 단죄하러 오시지 않고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We can see when a man or a woman has experienced this passage or not. People realize if a Christian reasons like a son or a slave. And we ourselves remember whether our educators took care of us like fathers or mothers, or if they simply imposed rules. The commandments are the path towards freedom, because they are the word of the Father that makes us free in this journey.

 

우리는 사람들이 통로를 경험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크리스천이 아들처럼 생각하는지 아니면 종처럼 생각하는지 알아차립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를 가르쳐주신 분들이 우리를 아버지 어머니로서 돌보셨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저 규정들을 적용했는지 기억합니다. 계명은 자유로의 길입니다. 계명들이 이 여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The world needs not legalism, but care. It needs Christians with the heart of sons.[2] It needs Christians with the heart of sons: do not forget this.

 

세상은 율법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아들의 마음을 가진 크리스천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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