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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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5.15 17:31 18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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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2018.5.9. 일반접견)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he catechesis on the Sacrament of Baptism leads us to speak today of the cleansing, accompanied by the invocation of the Most Holy Trinity, that is, the essential rite that properly “baptizes” namely, immerses in Christ’s Paschal Mystery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239). Saint Paul recalls the meaning of this gesture, to the Christians of Rome, asking first: “Do you not know that all of us who have been baptized into Jesus Christ were baptized into His death?” And then answering: “We were buried therefore with Him by Baptism unto death, so that as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 . . we too might walk in the newness of life” (Romans 6:3-4). Baptism opens the door to us to a life of resurrection, not to a worldly life <but to> a life according to Jesus.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세례의 성례에 대한 교리 교육은 오늘날 우리에게 성스런 삼위일체의 부름, 즉 예수님 부활의 신비에 있는 적절한 세례에 의한 정화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239). 성 바오로는 로마의 신자들에게 이 행위의 의미를 이렇게 회상하며 질문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로마 6:3-4) 세례는 우리에게 세속의 삶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삶, 부활로의 삶을 열어줍니다.

 

The baptismal font is the place in which Easter is lived with Christ! The old man, with his deceitful passions, is buried (Cf. Ephesians 4:22), to be reborn a new creature; the old things have truly passed and the new are born (Cf. 2 Corinthians 5:17). In the “Catecheses” attributed to Saint Cyril of Jerusalem, explained thus to the newly baptized is what happened to them in the water of Baptism. This explanation of Saint Cyril is beautiful: “In the same instant you were dead and born, and the same salutary wave becomes for you sepulcher and mother” (n. 20, Mistagogica 2, 4-6: PG 33, 1079-1082). The rebirth of the new man calls for the man corrupted by sin to be reduced to dust. The images of the tomb and of the maternal womb referring to the font are in fact very incisive to express what a great thing happens through the simple gestures of Baptism. I like to quote the inscription that is found in the old Roman Baptistery of the Lateran, on which one reads in Latin this expression, attributed to Pope Sixtus III: “Mother Church gives birth virginally, through water, the children she conceives by the breath of God. Those of you reborn from this font, hope for the Kingdom of Heaven.” It’s beautiful: the Church that has us born, the Church that is womb, is our Mother through Baptism.

 

세례의 샘은 부활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던 곳입니다.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버리고(에페소서, 4:22),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예수살렘의 성 치릴로에서 적힌 교리에 설명되어 있듯, 새롭게 세례를 받는 것은 세례의 물에서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 치릴로의 다음 설명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같은 순간에 너는 죽고, 태어났다. 그리고 동일한 구원의 물결이 너의 무덤이 되고, 어머니가 된다.”(n. 20, Mistagogica 2, 4-6: PG 33, 1079-1082).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죄로 타락한 인간이 먼지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세례의 샘에 대한 무덤과 어머니의 자궁의 이미지는 사실상 세례의 단순한 의식을 통해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기에 매우 정확합니다. 교황 식스투스 3세에 의해 라틴어로 쓰여진 라테란의 고대 로마 세례당에서 발견된 비문을 인용하면, “어머니인 교회는 주님의 숨으로 잉태한 아이에게 물을 통해 깨끗함을 줍니다. 세례의 샘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을 소망합니다.” 우리를 태어나게 한 교회, 어머니 자궁인 교회가 세례를 통해 우리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If our parents have given us earthly life, the Church has regenerated us to eternal life. We have become children in His Son Jesus (Cf. Romans 8:15; Galatians 4:5-7). On each one of us also, reborn of the water and of the Holy Spirit, the celestial Father has his voice resound with infinite love, which says: “You are my beloved son” (Cf. Matthew 3:17). This paternal voice, imperceptible to the ear but very audible to the heart of one who believes, accompanies us throughout our life, without ever abandoning us. Throughout life the Father says to us: “You are my beloved son, you are my beloved daughter.” God love us so much, as a Father, and He doesn’t leave us alone. This <is true> from the moment of Baptism. Reborn as children of God, we are so forever! Baptism, in fact, isn’t repeated, because it imprints an indelible spiritual mark: “No sin can erase this mark, even if sin prevents Baptism from bearing the fruits of salvation” (CCC, 1272). The mark of Baptism is never lost! “Father, but if a person becomes a brigand, of the most famous, who kills people, who commits injustices, doesn’t the mark go away? “ No. To his own shame that son of God does those things, but the mark doesn’t go away. And he continues to be a son of God who goes against God, but God never disowns His children. Have you understood this last thing? God never disowns His children. Shall we repeat it all together? “God never disowns His children.” A bit louder, as I’m deaf and I didn’t understand: [They repeat louder] “God never disowns His children.” There, that’s fine.

 

부모님이 우리에게 세상의 삶을 주셨다면, 교회는 우리를 영생으로 다시 탄생시킵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 예수 안에서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cf. 로마서 8:15; 갈라시온 4:5-7). 우리 각각은 또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천상의 아버지는 무한한 사랑으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cf. Matthew 3:17).” 이러한 아버지의 음성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귀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들을 수 있고, 우리 삶 전반에 떠나지 않고 함께 합니다. 삶 전반에 걸쳐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이다.” 주님은 아버지로서 우리를 넘치게 사랑하시고,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세례의 순간부터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우리는 영원히 있습니다! 사실상 세례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지울 수 없는 영적인 표식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죄도 이 표식을 지울 수 없습니다. 죄가 세례를 통해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로막는다 해도 이 표식은 지울 수 없습니다.”(CCC, 1272). 세례의 표식은 절대 지울 수 없습니다. “아버지, 만약 어떤 이가 사람을 죽이고 불의를 저지르는 강도가 된다면, 이 표식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이러한 일을 자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수치스러운 것이지만, 이 표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에게 반하는 자녀이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자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을 이해하셨습니까? 주님은 절대 자신의 자녀를 져버리지 않으십니다. 함께 반복해볼까요? 주님은 자녀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마치 귀가 잘 안들리는 사람처럼, 좀 더 크게 해봅시다. 주님은 자신의 자녀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잘 하셨습니다.

 

Incorporated in Christ through Baptism, the baptized are, therefore, conformed to Him, “the first-born among many brethren” (Romans 8:29). Through the action of the Holy Spirit, Baptism purifies, sanctifies, justifies, to form from many only one Body in Christ (Cf. 1 Corinthians 6:11; 12:13). The chrismal anointing expresses it, “which is sign of the royal priesthood of the baptized <person> and of his aggregation to the community of the people of God“ (Rite of the Baptism of Children, Introduction, n. 18, 3). Therefore, the priest anoints with the sacred chrism the head of every baptized <person>, after having pronounced these words, which explain its meaning: “God himself consecrates you with the chrism of salvation, so that, inserted in Christ, Priest, King and Prophet, you are ever members of His Body for eternal life” (Ibid., n. 71).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며, 세례를 받은 이는 따라서 그분과 일치됩니다.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로마서 8:29). 성령의 행위를 통해, 세례는 오직 주님 안의 한 몸으로 정화되고, 거룩해지며, 정당화됩니다.(cf. 1 고린도전서 6:11; 12:13) 성유를 바르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것은, “세례 받은 자의 충성한 사제의 표식이자, 주님 공동체 집단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어린이 세례의식, Introduction, n. 18, 3). 따라서, 사제는 성유바르는 행위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 기도를 한 뒤, 세례를 받는 이의 머리 위해 성스런 성유를 바릅니다. “하느님 자신이 구원의 성유로 너를 축성하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 사제, , 선지자와 하나되며, 영원한 생명을 위한 육체의 일원이 됩니다.”(Ibid., n. 71).

 

Brothers and sisters, the whole Christian vocation is here: to live united to Christ in the Holy Church, participants of the same consecration, to carry out the very same mission in this world, bearing fruits that last forever. Animated by the one Spirit, the people of God participate, in fact, in the functions of Jesus Christ, “Priest, King and Prophet,” and bear the responsibility of mission and service that stem from it (Cf. CCC, 783-786). What does it mean to participate in the royal and prophetic priesthood of Christ? It means making of oneself a pleasing offering to God (Cr. Romans 12:1), rendering witness to Him through a life of faith and charity (Cf. Lumen Gentium, 12), putting it at the service of others, following the Lord Jesus’ example (Cf. Matthew 20:25-28; John 13:13-17). Thank you.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기 위해, 의식의 참여하고, 세상에서 같은 사명을 수행하며, 영원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의 하나의 영으로 표현되고,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 , 예언자로 역할하며, 여기서 유래된 선교와 봉사의 책임을 집니다(CCC. 783-786). 그리스도의 선지적 사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며 그가 믿음과 사랑의 삶을 통해 그를 증거하고(cf. Lumen Gentium, 12),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주님을 기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cf. 마태 20: 25-28; 요한 13: 13-1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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