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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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4.22 09:11 35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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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 General Audience on April 18,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In this Easter Season we continue the catecheses on Baptism. The meaning of Baptism stands out clearly by its celebration; therefore we turn our attention to it. Considering the gestures and words of the liturgy, we can receive the grace and the commitment of this Sacrament, which is ever to be rediscovered. We recall it with the aspersion of blessed water, which can be done on Sunday at the beginning of the Mass, as well as in the renewal of the baptismal promises during the Easter Vigil. In fact, what happens in the celebration of Baptism arouses a spiritual dynamic that runs through the whole life of the baptized; it’s the start of a process, which enables one to live united to Christ in the Church.

 

교황님의 교리 (2018.4.18.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부활시기에 세례에 대한 교리를 계속합니다. 세례의 의미는 세례식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세례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전례에 사용되는 몸짓과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이 성사의 은총과 그때의 약속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은 지속적으로 재발견됩니다. 축성된 성수를 뿌릴 때마다 그를 기억하는데, 이는 주일미사의 시작에, 그리고 부활성야의 세례갱신 때에도 뿌려집니다. 사실 세례식에서 일어나는 일이 세례 받은 사람들의 전체적인 삶에 도도히 흐르는 영적인 역동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세례 받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살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출발입니다.

 

Therefore, to return to the source of the Christian life leads us to understand better the gift received on the day of our Baptism, and to renew our commitment to respond to it in the condition in which we find ourselves today to renew the commitment, to understand this gift better, which is Baptism, and to remember the day of our Baptism. Last Wednesday I asked that tasks be done at home and for every one of us to remember the day of <our> Baptism on what day we were baptized. I know that some of you know it, others don’t. Those that don’t know it must ask their parents, those persons, godfathers, godmothers . . . ask them: “What is the date of my Baptism?” Because Baptism is a rebirth and it is as if it were a second birthday. Understood? Do this task at home. Ask: “What is the date of my Baptism?”

 

그래서 크리스천 삶의 원천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세례 때 받은 선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우리의 삶의 조건 하에서 그에 응답하여 우리의 약속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즉 약속을 갱신하고, 이 선물 즉 세례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의 세례 날을 기억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제가 여러분에게 숙제를 드렸는데, 그것은 여러분의 세례 날을 기억하는 것이었지요? 즉 세례를 언제 받았는지, 어느 분은 알고, 알지 못하는 분이 있지요. 그런 분들은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여쭤보세요. 왜냐하면 세례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생일입니다. 아시겠지요? 이것을 숙제로 드립니다. 물어보십시오. “제가 언제 세례를 받았지요?”

 

First of all, in the welcoming rite, the candidate is asked his name, because the name indicates a person’s identity. When we introduce ourselves, we say our name immediately: “I’m called thus,” to come out of anonymity; the anonymous is he who has no name. To come out of anonymity we say our name immediately. Without a name, one remains unknown, without rights and duties. God calls each one of us by name, loving us individually, in the concreteness of our history.

 

우선, 환영식에서, 영세 대상자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은 정체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을 우선 말합니다. “저는 누구입니다.”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익명성에서 벗어납니다. 익명은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익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이름을 즉각적으로 얘기합니다. 이름이 없으면 권리도 의무도 없는 모르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아시고, 개인적으로 사랑하시며,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Baptism kindles our personal vocation to live as Christians, which is developed throughout life. And it implies a personal response and not borrowed, with a “copy and paste.” In fact, the Christian life is woven of a series of calls and responses: God continues to pronounce our name in the course of the years, having His call resound in a thousand ways to become conformed to His Son Jesus. Therefore, the name is important! It’s very important! Parents already think of the name they will give their child before the birth: this is also part of expecting a child that, in his name, will have his original identity, also for his Christian life connected to God.

 

세례는 우리의 크리스천 성소에 불을 붙여주고, 그 성소는 일생에 걸쳐 자라게 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응답을 의미하며 복사하는 것처럼 남에게 빌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크리스천 삶은 일련의 부르심과 응답으로 엮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수천의 방법으로 울려 퍼지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되어 우리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이름이 중요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은 아기를 낳기 전에 이름을 생각해둡니다. 그 이름에는 또한 아기에게 거는 바람의 일부 즉 원래의 정체성 그리고 또한 하느님과 연결된 크리스천 삶이 담겨 있습니다.

 

To become Christians is, certainly, a gift that comes from on high (Cf. John 3:3-8). Faith can’t be bought, but it can be asked for and received as a gift. “Lord, give me the gift of faith,” it’s a beautiful prayer! “That I may have faith,” is a beautiful prayer. To ask for it as a gift, but it can’t be bought, it is requested. In fact, “Baptism is the Sacrament of that faith with which men, illumined by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respond to Christ’s Gospel” ((Rite of the Baptism of Children, General Introduction, n. 3). The formation of the catechumens and the preparation of the parents tend to arouse and awaken a sincere faith in response to the Gospel, as the listening of the Word of God in the celebration of Baptism itself.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분명 하늘 높은 곳에서 오는 선물입니다. (요한 3,3-8참존) 믿음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선물로 청하여 받는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이것은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제가 믿음을 갖게 하소서는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선물로서 그것을 청하는 것이지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청해야 합니다. 사실, “세례는 그 믿음의 성사로서 사람이 성령의 은총의 빛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세례 의식, 소개, n.3) 세례지원자의 양성과 부모들의 준비과정에서 복음에 응답하는 충실한 믿음이 일깨워집니다. 세례식 바로 그날에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그 믿음이 일깨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If adult catechumens express personally what they want to receive as a gift from the Church, parents, with the godparents, present the children. The dialogue with them enables them to express the desire that the little ones receive Baptism and the Church’s intention to celebrate it. “Expression of all this is the cross, which the Celebrant and parents trace on the children’s forehead” (Rite of the Baptism of Children, Introduction, n. 16). “The sign of the cross, on the threshold of the celebration, marks with the imprint of Christ the one who is going to belong to Him and signifies the grace of the redemption that Christ won for us by His cross”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235).

 

성인 세례지원자가 교회로부터 선물로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부모들은 대부모들과 함께 그것을 어린이들과 얘기합니다. 그런 대화를 통해 그들은 어린이가 세례를 받고 교회가 세례식을 거행하고자 한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 모든 것의 표현은 세례식 거행자와 부모들이 어린이의 이마에 긋는 십자가입니다.” (어린이 세례 예식, 소개, n.16) “십자가 표시는 그분께 속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각인시키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얻어내신 구원의 은총을 나타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 1235)

 

In the ceremony we make the sign of the cross on the children. But I want to return to an argument of which I have spoken to you. Do our children know how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well? Many times I’ve seen children who don’t know how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And you, fathers, mothers, grandfathers, grandmothers, godfathers, godmothers must teach them to do well the sign of the cross because it is to repeat what was done in Baptism. Have you understood well? Teach the children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well. If they learn it as children, they will do it well later, as grownups.

 

세례식에서 우리는 어린이에게 십자 표시를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말씀 드렸던 얘기로 돌아가서, 어린이들이 십자가 표시를 잘하는지 묻겠습니다. 저는 어린이들이 성호를 잘 긋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모님들, 할머니 할아버지들, 대부모들이 어린이에 십자가 표시를 제대로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세례식에서 한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요? 어린이들이 십자가 표시를 잘 하도록 가르치십시오. 어릴 때 제대로 배우면 그들은 커서도 잘 하게 됩니다.

 

The cross is the badge that manifests who we are: our speaking, thinking, looking, working is under the sign of the cross, namely, under the sign of Jesus’ love to the end. The children are marked on the forehead. The adult catechumens are also marked on the senses with these words: “Receive the sign of the cross on the ears to listen to the voice of the Lord”; “on the eyes to see the splendour of the face of God”; on the mouth, to respond to the word of God”; on the breast, so that through faith, Christ will dwell in your hearts.”; “on the shoulders, to support Christ’s gentle yoke”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of Adults, n. 85).

 

십자가는 우리가 누구라는 것을 표시해주는 뱃지입니다. 우리의 말, 생각, 용모, 업무가 십자가 표시 아래 있습니다. 즉 변치 않는 예수님의 사랑의 표시 안에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합니다. 성인 세례지원자 또한 다음과 같은 말로 표시를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귀에, 하느님 얼굴의 광채를 보기 위해서 눈에,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기 위해서 입에,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가슴에 머무르시도록 가슴에, 그리스도의 가벼운 멍에를 지기 위해서 어깨에 십자가의 표시를 받으십시오.” (성인의 크리스천 지작 예식, n.85)

 

One becomes a Christian to the degree in which the cross is imprinted in us as a “paschal” sign (Cf. Revelation 14:1; 22:4), making visible, also externally, the Christian way of facing life. To do the sign of the cross when we wake up, before meals, before a danger, as a defense against evil, in the evening before sleeping, means to say to ourselves, and to others, to whom we belong, who we want to be. This is why it’s so important to teach children to make well the sign of the cross. And, as we do on entering a church, we can do so also at home, keeping in a small appropriate glass some blessed water some families do it: thus every time we come in or go out, by doing the sign of the cross with that water we remember that we are baptized. Don’t forget, I repeat: teach the children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우리는 십자가가 파스카표징으로서 우리에게 각인된 정도만큼의 크리스천이 됩니다. (요한 묵시록, 14,1; 22,4 참조) 이것은 또한 삶을 대하는 우리의 크리스천 방식으로 외적으로 나타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 전에, 위험한 일을 하기 전에, 악에 대항할 때, 자기 전에 십자가를 긋는 것은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속한 분께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십자가 긋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갈 때 하듯이, 집에 들어갈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성수 그릇에 성수를 보관하고, 어떤 분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집에 드나들 때마다 성수에 손을 담그고 성호를 그음으로써 우리의 세례를 기억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반복합니다. 어린이에게 성호 긋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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