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영어성경묵상

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4.08 09:24 358 0

본문

The Holy Father’s CatechesisGeneral Audience on April 4,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and Happy Easter! You see that today there are flowers: flowers that speak of joy and gladness. In some places, Easter is also called “flowering Easter,” because the Risen Christ flowers: he is the new flower; our justification flowers, the holiness of the Church flowers. Therefore, many flowers it’s our joy. We celebrate Easter the whole week, the whole week. And therefore all of us say to one another once again the wish of a “Happy Easter.” We say together: “Happy Easter,” all! [They answer: Happy Easter!] I would like us also to say Happy Easter because he was Bishop of Rome to our beloved Pope Benedict, who follows us on television. We all say Happy Easter to Pope Benedict [They say: “Happy Easter!”] and loud applause.

교황님의 교리 (2018.4.4.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행복한 부활절 입니다! 보시다시피, 오늘 여기 꽃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말하는 꽃들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부활절을 꽃피는 부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피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꽃이자, 우리를 정의하는 꽃, 교회의 거룩함의 꽃입니다. 따라서 많은 꽃들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 일주일 내내 부활절을 기념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다시 한 번 행복한 부활절 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다 같이 말해보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부활절 되세요!” 또한 로마의 주교이셨고, 텔레비젼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우리가 사랑하는 베네딕트 교황님께도 부활절 인사를 전합시다. 베네딕트 교황님, 행복한 부활절 되세요!

With this catechesis, we conclude today the series dedicated to the Mass, which is, in fact, the commemoration, but not only as memory, in which the Passion and Resurrection of Jesus are relived. The last time we arrived at Communion and the Prayer after Communion. After this Prayer, the Mass ends with the blessing imparted by the priest and the dismissal of the people (Cf. Ordinamento Generale del Messale Romano, 90). As it began with the sign of the cross, in the Name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it’s again in the Name of the Trinity that the Mass is sealed, namely, the liturgical action.

이번 교리를 통해, 미사에 대한 교리를 마치고자 합니다. 미사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재현되는 기억일 뿐 아니라, 그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지난 교리에서 우리는 성체 전례와 성체를 모신 후 드리는 기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기도 후에 미사는 사제의 축복과 신자들의 해산으로 끝을 맺습니다(cf. Ordinamento Generale del Messale Romano, 90).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성호경으로 미사를 시작하였듯이,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전례의식인 미사가 봉인됩니다.

However, we know well that while the Mass finishes, the commitment opens to Christian witness. Christians don’t go to Mass to carry out a weekly task and then forget, no. Christians go to Mass to take part in the Passion and Resurrection of the Lord and then to live more as Christians: the commitment of Christian witness opens. We leave the church to “go in peace” to bring God’s blessing to our daily activities, in our homes, in work environments, among the occupations of the earthly city, “glorifying the Lord with our life.” However, if we leave the church chatting and saying: “look at this,” Look at that.,” talking too much, the Mass has not entered our heart. Why? because we are unable to live the Christian witness. Every time I go out of the Mass, I must leave better than I entered, with more life, with more strength, with a greater desire to give Christian witness. Through the Eucharist, the Lord Jesus enters in us, in our heart and in our flesh, so that we can “express in life the Sacrament received in faith” (Messale Romano, Collect of Monday of the Octave of Easter).

그러나 우리는 미사를 마치더라도, 신자로서의 헌신이 열려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한 주의 과업을 수행한 뒤 잊어버리려고 미사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함께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미사에 갑니다. 신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헌신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 일상생활, 우리의 가정, 직장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지상에서의 과업인 우리 삶 속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며 성당을 나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성당에서 나오며 저것 좀 봐”, “저기 저건 뭐지?”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미사는 우리 가슴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늘 미사를 마치고 나올때마다, 더 큰 삶, 더 큰 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고 싶은 더 큰 갈망을 가지고, 들어갈 때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나와야 합니다. 성찬 전례를 통해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 안에, 우리 가슴 속에, 우리의 육체 안에 들어오시고, 따라서 신앙으로 받은 성체를 삶 속에 표현할 수 있습니다(Messale Romano, Collect of Monday of the Octave of Easter).

From the celebration to life, therefore, aware that the Mass finds its fulfillment in the concrete choices of one who is personally involved in Christ’s mystery. We must not forget that we celebrate the Eucharist to learn to become Eucharistic men and women.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o let Christ act in our works: that His thoughts be our thoughts, His sentiments ours, His choices our choices. And this is holiness: to do as Christ did is Christian holiness. Saint Paul expresses it with precision, speaking of his own assimilation to Jesus, and he says thus: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atians 2:19-20). This is Christian witness. Paul’s experience illumines us also: in the measure in which we mortify our egoism, namely, that we die to what is opposed to the Gospel and to the love of Jesus, greater room is created in us by the power of His Spirit. Christians are men and women that let their soul be enlarged with the strength of the Holy Spirit, after having received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Let your soul be enlarged! Not these narrow and closed, small and egoistic souls, no! Wide souls, great souls, with great horizons . . . Let your soul be enlarged with the strength of the Spirit, after having received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그러므로 삶에 대한 축복에서 시작하여, 미사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함께하려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선택으로 완성된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체와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가 성찬례를 거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그리스도의 행동이 우리 안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고, 그의 감정이 우리의 것이며, 그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함입니다. 그리스도가 한 것과 같이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입니다. 성 바오로는 자신의 그리스도와의 동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지금 삶을 사는 것은 더 이상 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이 육체 속에서 사는 삶은, 저를 사랑해주시고, 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2 : 19-20).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증언입니다. 바오로의 경험은 또한 우리가 이기심을 줄이는 것, 즉 복음과 반대되는 것과 싸우고, 예수님의 사랑을 위해 산다면, 주님의 영적인 힘으로 더 큰 공간이 우리 안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들인 후 성령의 힘으로 영혼이 더욱 커지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넓히십시오! 좁고 닫힌 것, 작고 이기적인 영혼이 아니라, 큰 지평을 가진 넓은 영혼, 큰 영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들인 후, 성령의 힘 안에서 당신의 영혼을 확장시키십시오.

Because Christ’s real presence in the consecrated Bread doesn’t end with the Mass (Cf.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374), the Eucharist is kept in the Tabernacle for Communion <to be taken> to the sick and for silent adoration of the Lord in the Most Blessed Sacrament; Eucharistic worship outside of the Mass, be it in a private or communal way, helps us in fact to remain in Christ (Cf. Ibid., 1378-1380).

봉헌된 빵 안의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은 미사와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cf.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374). 성체는 아픈 이들을 위해, 또한 주님의 큰 희생에 대한 묵상을 위해 영성체를 모신 감실 안에 보관됩니다. 미사 밖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영성체 의식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있게 해줍니다(Cf. Ibid., 1378-1380).

Therefore, the fruits of the Mass are destined to mature in everyday life. We can say so, forcing somewhat the image: the Mass is as the grain, the grain of wheat, which then grows in ordinary life, it grows and matures in good works, in attitudes that make us similar to Jesus. So the fruits of the Mass are destined to mature in everyday life. In truth, enhancing our union with Christ, the Eucharist updates the grace that the Spirit gave us in Baptism and in Confirmation so that our Christian witness is credible (Cf. Ibid., 1391-1392).

그러므로 미사의 열매는 일상 생활 속에서 성숙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미사는 곡식과 같습니다. 평범한 생활 안에서 자라나는 밀알의 곡식입니다. 밀알은 우리를 예수님과 닮게 해주는 좋은 일, 좋은 행동을 통해 자라나고 성장합니다. 따라서 미사의 열매는 일상생활 안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키우며, 성찬 전례는 세례와 견진을 통해 성령이 주신 영광을 보여주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목격한 것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해줍니다(cf. Ibid., 1391-1392).

Again, by enkindling divine charity in our hearts, what does the Eucharist do? It separates us from sin. “The more we share the life of Christ and progress in His friendship, the more difficult it is to break away from Him by mortal sin” (Ibid., 1395). The regular approach to the Eucharistic Banquet renews, strengthens and deepens the bond with the Christian community to which we belong, according to the principle that the Eucharist makes the Church (Cf. Ibid., 1396), it unites us all.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사랑을 풍성하게 함으로써, 성찬 전례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죄와 분리시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누고 그와의 친교가 발전할수록, 죽음의 죄로 인해 그 분과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더욱 힘들어 집니다."(Ibid., 1395). 성체 전례를 정기적으로 거행하는 것은, 우리가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의 유대를 새롭게 하고, 강화시키며, 깊어지게 합니다. 성당을 구성하는 성찬례의 원칙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합니다.

Finally, to take part in the Eucharist commits us in our relations with others, especially the poor, educating us to pass from the flesh of Christ to the flesh of brethren, in which He waits to be recognized, served, honored and loved by us (Cf. Ibid., 1397). Bearing the treasure of union with Christ in earthen vessels (Cf. 2 Corinthians 4:7) we have constant need to return to the holy altar until we enjoy fully in Paradise the beatitude of the wedding banquet of the Lamb (Cf. Revelation 19:9).

마침내 성체 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헌신하게 합니다. 이는 형제의 육체를 그리스도의 육체와 같이 여기도록 가르쳐줍니다. 그는 인식되고, 섬기며, 존경하고 사랑받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cf. Ibid., 1397). 흙 그릇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보화를 품고(Cf. 2 Corinthians 4:7), 우리는 어린 양의 결혼 예식의 아름다움의 낙원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때까지 거룩한 제단으로 끊임없이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cf. Revelation 19 : 9).

We thank the Lord for the journey of rediscovery of the Holy Mass, which He has given us to fulfill together, and we let ourselves be drawn with renewed faith to this real encounter with Jesus, dead and risen for us, our contemporary. And may our life always be “flowering,” as Easter, with the flowers of hope, of faith <and> of good works. May we always find the strength for this in the Eucharist, in union with Jesus. Happy Easter to all!

거룩한 미사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는 우리가 함께 충만해질 수 있도록 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는 새로운 신앙에 푹 빠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부활절과 같이 희망의 꽃, 신앙의 꽃, 선한 일의 꽃으로 꽃피워지길바랍니다. 성체 안에서, 예수님과의 연합으로, 이러한 힘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모두 행복한 부활절 되십시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