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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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최고관리자
2018.04.07 15:43 4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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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 General Audience on March 28,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oday I would like to pause to meditate on the Easter Triduum, which begins tomorrow, to deepen a bit what the most important days of the Liturgical Year represent for us believers. I would like to ask you a question: what is the most important feast of our faith: Christmas or Easter? Easter, because it is the feast of our salvation, the feast of God’s love for us, the feast, the celebration of His Death and Resurrection. Therefore, I would like to reflect with you on this feast, on these days, which are paschal days, until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교황님의 교리 (2018.3.28.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미사성제에 대한 교리를 잠시 멈추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성삼일에 대해서, 연중 가장 중요한 이 전례가 우리 신자들에게 주는 의미를 깊이 새기기 위해서,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은 어떤 축일인가요? 크리스마스 인가요 부활절인가요? 부활절입니다. 우리 구원의 축일이고,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축일이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축일 즉 주님부활까지의 성삼일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These days constitute the celebratory memory of one great mystery: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The Triduum begins tomorrow, with the Mass of the Lord’s Supper and it will end with Vespers of the Sunday of Resurrection. Then Easter Monday comes to celebrate this great feast: one more day. However, this is post-liturgical: it’s the family feast, it’s the feast of society. It marks the fundamental stages of our faith and of our vocation in the world, and all Christians are called to live the three Holy Days Thursday, Friday, Saturday; and Sunday of course , Saturday is the Resurrection the three Holy Days as, so to speak, the “matrix” of their personal and communal life, of their community life, as the exodus from Egypt was lived by our Jewish brothers.

 

이 때에 우리는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위대한 신비에 대한 기념과 축하를 합니다. 성삼일은 주님의 마지막 만찬 미사를 시작으로 내일부터 시작되어 부활주일의 저녁기도로 끝납니다. 그리고 부활 월요일에 하루 더 이 위대한 축일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례 후의 축하로서 가정 축일이며 사회의 축일입니다. 성삼일은 세상에서의 우리의 신앙과 성소의 근본적인 단계를 표시하며, 모든 신자들은 이 성삼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지키도록 불림을 받습니다. 물론 주일도 지켜야지요. 토요일이 부활입니다. 이 성삼일을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 삶의 기반으로서, 마치 우리의 유대 형제들이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을 기념하고 지키듯이, 기념하고 지킵니다.

 

These three days propose again to the Christian people the great events of the salvation wrought by Christ, and so they project it on the horizon of their future destiny and reinforce it in their commitment of witness in history. Reviewing the stages lived in the Triduum, on Easter morning the Song of the Sequence, namely a hymn or a sort of Psalm, makes us hear solemnly the announcement of the Resurrection, and it says thus: “Christ, our hope, is risen and precedes us in Galilee.” This is the great affirmation: Christ is risen. And in many nations of the world, especially in Eastern Europe, people greet one another in these paschal days not with “good morning,” “good evening” but with “Christ is risen,” to affirm the great paschal greeting. “Christ is risen.”

 

이 삼일은 크리스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위대한 구원 사건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어, 신자들이 그들의 미래의 지평에 이 사건을 투사하고, 자신들의 증거 약속을 강화하도록 합니다. 성삼일의 각 단계를 지키고 부활아침에 듣는 부속가에서 우리는 부활에 대한 장엄한 발표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이것은 위대한 확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특히 동유럽에서 사람들은 파스카 기간에 굿모닝또는 굿이브닝이라고 인사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위대한 파스칼 인사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The Triduum culminates with these words “Christ is risen” of moving exultance. They contain not only an announcement of joy and hope, but also an appeal to responsibility and to the mission. And it does not end with the dove, the eggs, the feasts even if this is good because it’s the family feast but it doesn’t end so. The way to the mission begins there, at the announcement: Christ is risen. And this announcement, to which the Triduum leads, preparing us to receive it, is the heart of our faith and of our hope, it’s the core, it’s the announcement, it’s the word is difficult, but says it all , it’s the kerygma, which continually evangelizes the Church and that she in turn is sent to evangelize.

 

성삼일은 기쁨에 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말로 최고조에 달합니다. 이 말은 기쁨과 희망뿐만 아니라 책임감과 사명에 대한 요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달걀, 축제 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정축제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의 발표 순간, 여기에서 사명의 길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면서 성삼일이 향하여 간 이 발표는 우리의 신앙과 희망의 중심입니다. 그것은 핵심입니다. 그것은 발표입니다. 단어가 어렵지만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케리그마 즉 권위 있는 발표이며 교회를 지속적으로 복음화하고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 보내집니다.

 

Saint Paul summarizes the paschal event in this expression: “Christ, our paschal lamb, has been sacrificed” (1 Corinthians 5:7), as lamb. He was immolated. Therefore he continues “the old things have passed and everything has become new” (2 Corinthians 5:15). Reborn. And therefore, from the beginning, people were baptized on the day of Easter. Also this Saturday night I will baptize here, in Saint Peter’s, eight adults who are beginning the Christian life. And everything begins because they will be reborn. And, with another synthetic formula Saint Paul explains that Christ “was put to death for our trespasses and raised for our justification” (Romans 4:25). <He is> the only one, the only one that justifies us; Jesus Christ is the only one who makes us be reborn, no one else. And, therefore, nothing must be paid, because justification making us just is free. And this is the grandeur of the love of Jesus: he gives His life freely to make us saints, to renew us, to forgive us.

 

성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파스카 사건을 요약합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코린토 15,7) 양으로서 그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오래된 것은 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코린토 25,15)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들은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번 토요일에 저도 여기 성 베드로 성당에서 크리스천 삶을 시작하는 8 사람의 어른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그들이 다시 태어날 것이므로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합성공식을 이용하여 성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로마서 4,25) 그분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단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단 한 분이십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그것에 대해 값을 지불하면 안 됩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공짜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사랑의 고상함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새롭게 하기 위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거저 주십니다.

 

And this is precisely the core of this Paschal Triduum. In the Paschal Triduum the memory of this fundamental event becomes a full celebration of gratitude and, at the same time, it renews in the baptized the sense of their new condition, which again the Apostle Paul expresses thus: “If then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 and not . . . those that are on earth” (Colossians 3:1-3). Look up, look at the horizon, widen the horizons: this is our faith, this is our justification, this is the state of grace! Through Baptism, in fact, we are raised with Jesus and we die to the things and the logic of the world; we are reborn as new creatures: a reality that calls for becoming concrete existence day by day.

 

이것이 바로 이 성삼일의 핵심입니다. 성삼일에 이 근본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충만한 감사의 축제가 되고, 동시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새로워진 상황을 새롭게 느끼도록 합니다. 사도바오로는 이것을 다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코로세 3,1-3) 눈을 들어 지평을 보십시오. 그리고 지평을 넓히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우리의 의로움이고, 이것이 고상한 상태입니다. 사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다시 태어났고 세상의 것과 논리와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루하루 구체적인 존재가 되라고 재촉하는 실체입니다.

 

If a Christian truly lets himself be washed by Christ, if he truly lets himself be stripped by Him of the old man to walk in a new life, although remaining a sinner, because we are all so he can no longer be corrupt, Jesus’ justification saves us from corruption; we are sinners but not corrupt; he can no longer live with death in his soul, or even be the cause of death. And here I must say a sad and painful thing There are fake Christians: those that say “Jesus is risen,” “I’ve been justified by Jesus,” I am in the new life, but I live a corrupt life. And these fake Christians will end badly. A Christians, I repeat, is a sinner we are all so I am so but we have the certainty that when we ask the Lord for forgiveness, He forgives us.

 

크리스천이 자신을 온전히 맡겨 그리스도께서 씻어주시도록 하고, 자신을 온전히 맡겨 그리스도께서 옛 자신을 없애주시도록 하여, 새로운 삶을 걷는다면, 아직 죄인으로 남아있더라도 -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에 - 그는 더 이상 부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이 우리를 부패에서 구해줍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부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영혼 안에 죽음과 함께 살지 않고, 죽음의 원인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저는 슬프고 고통스런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그것은 거짓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또는 저는 예수님께서 의롭게 해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부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거짓 크리스천들은 나쁜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반복하지만 크리스천은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청하면 주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The corrupt <Christian> feigns being an honourable person but, in the end, putridness is in his heart. Jesus gives us a new life. A Christian can’t live with death in his soul, or be the cause of death. Let us think not to go far we think of home, we think of so-called “mafiosi Christians.” But these have nothing of the Christian: they call themselves Christians, but they bring death in their soul and to others. Let us pray for them, that the Lord may touch their soul. One’s neighbour, especially the littlest and the one suffering most, becomes the concrete face to whom to give the love that Jesus has given us. And the world becomes the place of our new life as risen ones. We have risen with Jesus: standing, and with our head held high, we can share the humiliation of those that still today, as Jesus, are in suffering, in nakedness, in necessity, in loneliness, in death, to become, thanks to Him and with Him, instruments of rescue and of hope, signs of life and of resurrection.

 

부패한 크리스천은 영예로운 사람임을 가장하지만 결국 썩은 내가 나는 타락이 그의 가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크리스천은 그의 영혼 안에 죽음 또는 죽음의 원인을 가지고 살지 못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소위 마피아단원인 크리스천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영혼 안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 안에 죽음을 가져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시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의 이웃, 특별히 가장 작고 가장 고통 받는 이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줄 구체적인 얼굴이 됩니다. 세상은 부활한 사람으로서의 우리의 새로운 삶의 장소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였습니다. 머리를 들고, 두 발로 서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예수님처럼 고통 받고, 헐벗고, 궁핍하고, 외롭고, 죽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욕감을 함께 느낄 수 있고, 그분의 덕택으로 그분과 함께 구조와 희망의 도구와 생명과 부활의 표시가 될 수 있습니다.

 

In many countries here in Italy and also in my homeland there is the custom that, on Easter day, when the bells are heard, mothers, grandmothers bring the children to wash their eyes with water, with the water of life, as a sign to be able to see the things of Jesus, the new things. In this Easter, let us wash our soul, wash the eyes of the soul, to see beautiful things and do beautiful things. And this is wonderful! This is in fact the Resurrection of Jesus after His death, which was the price to save us all.

 

이곳 이태리 그리고 저의 조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부활절의 벨이 울리면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물로 눈을 씻어주는 관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 즉 새로운 일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표시로 생명의 물로 씻어줍니다. 이 부활절에 우리도 아름다운 일을 보고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을, 우리 영혼의 눈을 씻읍시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것이 사실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값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Dear brothers and sisters, let us dispose ourselves to live well this now imminent Holy Triduum it begins tomorrow , to be ever more profoundly inserted in the mystery of Christ, dead and risen for us. May the Most Holy Virgin, who followed Jesus in His Passion She was there, looked, suffered . . . was present and united to Him under His cross, but was not ashamed of her Son, a Mother who was never ashamed of her son! She was there, and received in her Mother’s heart the immense joy of the Resurrection , accompany us in this spiritual itinerary. May she obtain for us the grace to be interiorly involved in the celebrations of the next days, so that our heart and our life are really transformed.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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