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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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교리

관리자
2018.03.18 19:31 4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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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Father’s Catechesis - General Audience on March 14,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We continue with the Catechesis on the Holy Mass. In the Last Supper, after Jesus took the bread and the chalice of the wine, and rendered thanks to God, we know that He “broke the bread.” In the Eucharistic Liturgy of the Mass, the breaking of the Bread corresponds to this action, preceded by the prayer that the Lord taught us, namely, the “Our Father.”

교황님의 교리 (2018.3.14.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사성제에 대한 교리를 계속합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 잔을 드시고 하느님께 기도하신 후에 빵을 나누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사의 성체전례에서 빵을 나누는 것은 이 행위에 해당하며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우리 아버지기도 다음에 이어집니다.

And so we begin the rites of Communion, prolonging the praise and supplication of the Eucharistic Prayer with the communal recitation of the “Our Father.” This isn’t one of the many Christian prayers, but the prayer of the children of God; it’s the great prayer that Jesus taught us. In fact, consigned to us in the day of our Baptism, the “Our Father” makes resound in us the same sentiments that were in Christ Jesus. When we pray the “Our Father,” we pray as Jesus prayed. It’s the prayer that Jesus did, and He taught it to us, when the disciples said to him: “Master, teach us to pray as you pray.” And Jesus prayed thus. It’s so good to pray like Jesus! Formed to His divine teaching, we dare to address God calling Him “Father,” because we are reborn as His children through water and the Holy Spirit (Cf. Ephesians 1:5).

이렇게 우리 아버지기도를 다 함께 드리며 성체기도의 찬미와 청원을 연장하면서 성체예절을 시작합니다. 이 기도는 여러 크리스천 기도 중의 하나가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들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위대한 기도입니다. 사실, 영세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던 같은 정서가 우리 안에 울리게 합니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를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대로 합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은 정말 좋습니다. 그분 기도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을 통해 그분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서 1,5 참조).

No one, in truth, would be able to call Him familiarly “Abba”“Father” without being generated by God, without the inspiration of the Spirit, as Saint Paul teaches (Cf. Romans 8:15). We must think: no one can call Him “Father” without the inspiration of the Spirit. How many times there are people that say “Our Father,” but don’t know what they say. Because yes, He is the Father, but when you say “Father” do you feel He is Father, your Father, Father of humanity, Father of Jesus Christ? Do you have a relationship with this Father? When we pray the “Our Father,” we connect with the Father who loves us, but it’s the Spirit that gives us this connection, this sentiment of being children of God.

바오로 성인이 말했듯이 하느님께서 자녀로 삼으시지 않고, 성령의 영을 받지 않고는, (로마서 8,15 참조) 아무도 하느님을 가족처럼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없습니다. 성령의 영을 받지 않고 아무도 그분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아버지를 기도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아버지이신데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진짜 아버지라고 느낍니까? 즉 여러분의 아버지, 인간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느낍니까? 이 아버지와 관계성을 가지고 있나요? “우리 아버지를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 연결 즉 하느님의 자녀라는 감정을 주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What better prayer, than that taught by Jesus, can dispose us to sacramental Communion with Him? In addition to being prayed in the Mass, the “Our Father” is prayed in the morning and in the evening, in Lauds and in Vespers; in this way, the filial attitude to God and of fraternity with our neighbour contribute to give a Christian form to our days. In the Lord’s Prayer in the “Our Father” we ask for our “daily bread,” in which we make a particular reference to the Eucharistic Bread, of which we are in need to live as children of God. We also implore “the forgiveness of our trespasses,” and to be worthy to receive God’s forgiveness, we commit ourselves to forgive those that have offended us.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 이외의 어떤 기도가 우리를 그분과의 성사적 통교로 이끌 수 있습니까? 미사 때 기도하고 우리 아버지기도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에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대한 가족 같은 태도 그리고 이웃에 대한 형제애의 태도가 우리의 일상에 그리스도인 다움을 갖게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즉 우리 아버지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청합니다. 이때 우리는 특별히 성체의 빵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실 것을 청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를 청하며 동시에 우리에게 잘 못한 이를 용서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And this isn’t easy; it’s a grace we must request: “Lord, teach me to forgive as you have forgiven me.” It’s a grace. We can’t <forgive> with our own strength; to forgive is a grace of the Holy Spirit. So, while we open our heart to God, the “Our Father” disposes us also to fraternal love. Finally, we also ask God to “deliver us from evil,” which separates us from Him and divides us from our brothers. We understand well that these are very apt requests to prepare us for Holy Communion [Cf. Ordinamento Generale del Messale Romano, (OGMR), 81].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은총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용서하신 것처럼 저도 용서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것은 은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용서하지 못합니다. 용서하는 것은 성령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께 가슴을 열 때 우리의 아버지가 우리를 또한 형제적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 우리를 악에서 구해주시도록청합니다. 그 악은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떼어놓고, 우리의 형제들로부터 분열시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거룩한 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꼭 필요한 청이라는 것을 압니다. [로마 전례 경본, 81 참조]

 

In fact, what we request in the “Our Father,” is prolonged by the prayer of the priest who, in the name of all, prays: “Deliver us, O Lord, from all evils and grant peace in our days.” And then it receives a sort of seal in the rite of peace: invoked from Christ first of all is the gift of his peace (Cf. John 14:27)) so different from that of the world it makes the Church grow in unity and in peace, according to His will; then, with the concrete gesture exchanged between us, we express “ecclesial communion and mutual love before communing with the Sacrament” (OGMR, 82).

 

사실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서 청하는 것은 사제의 기도로 연장됩니다. 사제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모든 악에서 저희를 구하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그리고 평화의 예절에서 일종의 봉인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께 청한 것은 그분의 평화입니다. (요한 14,27 참조) 그분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교회가 그분의 뜻에 따라 일치와 평화 안에 성장하게 하고, 우리가 나눈 구체적인 평화의 인사와 함께 우리는 성체성사 전에 교회적인 통공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표현합니다.“ (로마 전례 경본, 82)

 

In the Roman Rite the exchange of the sign of peace, placed since antiquity before Communion, is ordered to Eucharistic Communion. According to Saint Paul’s admonition, it’s not possible to commune with the one Bread, which renders us one Body in Christ, without recognizing ourselves pacified by fraternal love (Cf. 1 Corinthians 10:16-17; 11:29). The peace of Christ can’t root itself in a heart incapable of living fraternity and of recomposing it after having wounded it. The Lord gives peace; He gives us the grace to forgive those that have offended us.

로마 예절에서 오래 전부터 행해진 평화의 인사 교환은 성체성사 전에 배치되었습니다. 바오로 성인의 권고에 의하면 우리들이 형제적 사랑으로 누그러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하나의 빵과 통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린토 110,16-17, 11,29 참조) 그리스도의 평화는 형제애를 살지 못하는 가슴 그리고 상처를 받고 다시 아물지 않은 가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평화를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은총을 주십니다.

The gesture of peace is followed by the breaking of the Bread, which since apostolic times has given the name to the entire celebration of the Eucharist (Cf. OGMR, 83;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329). Carried out by Jesus during the Last Supper, the breaking of the Bread is the revealing gesture that enabled the disciples to recognize Him after His Resurrection. We recall the disciples of Emmaus who, speaking of the encounter with the Risen One, recount “how they recognized Him in the breaking of the bread” (Cf. Luke 24:30-31.35).

 

평화의 인사에 이어 빵 나눔이 있는데,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성찬모임을 빵 나눔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전례 경본, 83; 가톨릭교회 교리, 1329)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 나눔은 제자들이 부활 후에 예수님을 알아보게 한 표시입니다. 우리는 엠마오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에 대해 얘기하며 빵을 나눌 때 어떻게 그분을 알아봤나에 대해설명한 것을 기억합니다. (루카 24,30-31, 35)

 

The breaking of the Eucharistic Bread is accompanied by the invocation of the “Lamb of God,” figure with which John the Baptist indicated Jesus “He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ohn 1:29). The biblical image of the lamb speaks of the Redemption (Cf. Exodus 12:1-14; Isaiah 53:7; 1 Peter 1:19; Revelation 7:14). In the Eucharistic Bread, broken for the life of the world, the praying assembly recognizes the true Lamb of God, namely, Christ the Redeemer, and begs Him: “Have mercy on us . . . grant us peace.” “Have mercy on us,” “grant us peace” are invocations that, from the “Our Father” prayer to the breaking of the Bread, help us to dispose our spirit to take part in the Eucharistic feast, source of communion with God and with brothers.

 

성체 빵 나눔은 하느님의 어린양청원을 동반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켰던 이름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요한 1,29) 양의 성경적 이미지는 구원을 얘기합니다. (탈출기 12,1-14; 이사야 53,7; 베드로 11,19; 묵시록 7,14 참조)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나누어진 성체 빵 안에 기도하는 군중이 진정한 하느님의 어린양, 구원자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께 자비를 주소서....평화를 주소서하고 청합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우리의 아버지기도로부터 빵의 나눔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통교의 원천인 성체모임에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청원입니다.

 

Let us not forget the great prayer: that which Jesus taught, and which is the prayer with which He prayed to the Father. And this prayer prepares us for Communion.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그분 자신이 하느님께 기도하신 위대한 기도를 잊지 맙시다. 이 기도는 우리를 성체성사에 임하도록 준비시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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