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영어성경묵상

교황님의 교리

관리자
2018.02.17 22:05 369 0

본문

평화를 빕니다.
 
설 명절 잘 보내고 계시지요?
 
미사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의 계속입니다. 오늘도 말씀전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독서와 강론은 말씀전례의 가운데 부분이며 독서는
명확하게 읽어야 하고 강론은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강론을 포함한 독서를 통해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들을 
권리를 충족시키는데 만약에 독서를 잘 들리지 않게 한다든가 강론을
열정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이런 신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신경 후에 보편지향기도는 교회와 세상의 필요를 청하는 순간으로서
겨자씨의 믿음만 있어도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청하는
시간이라고 힘 주어 말씀하십니다.
 
윤영학 아오스딩 드림


 

 The Holy Father’s Catechesis - General Audience on February 14,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Good morning even if the day is a bit nasty. However, if the spirit is joyful it’s always a good day. So, good morning! Today the Audience will take place in two areas: a small group of the sick is in the Hall, given the weather, and we are here. But we see them and they see us in the giant screen. We greet them with an applause.

교황님의 교리 (2018.2.14.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날씨가 좋지 않지만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쁘면 항상 좋은 날입니다. 그래서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접견은 두 곳에서 열립니다. 날씨를 감안하여 환자들의 작은 그룹은 홀에 있고 우리는 여기 베드로 광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있고 그들도 우리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들과 환호로 인사를 나눕시다.

We continue with the catechesis on the Mass. To what does the listening of the biblical Readings, prolonged in the homily, respond? It responds to a right: the spiritual right of the People of God to receive abundantly the treasure of the Word of God (Cf. Introduction to the Lectionary, 45). When we go to Mass, each one of us has the right to receive abundantly the Word of God well read, well said and then, explained well in the homily.

미사에 대한 교리를 계속합니다. 무엇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강론을 포함한 성경 독서에 귀를 기울이나요? 권리에 대한 응답입니다. 즉, 하느님 말씀의 보물을 풍성하게 받는 하느님 백성의 영적인 권리입니다. (미사독서목록지침, 소개 참조) 미사에 갈 때, 우리 각자는 명확하게 봉독되고, 강론에서 잘 설명된 하느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It’s a right! And when the Word of God isn’t read well, isn’t preached with fervour by the Deacon, by the Priest of by the Bishop, one fails a right of the faithful. We have the right to hear the Word of God. The Lord speaks to all, Pastors and faithful. He knocks at the heart of all those taking part in the Mass, each one in his condition of life, age <and> situation. The Lord consoles, calls, brings forth shoots of new and reconciled life. And <He does> this through His Word; His Word knocks at the heart and changes hearts!

그것은 권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읽혀지지 않을 때, 부제, 사제, 그리고 주교가 열정을 가지고 강론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신자들의 권리를 잃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목자들과 신자들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미사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노크하십니다. 각자 자신의 삶, 나이, 그리고 상황의 상태에 있는 각자의 마음을 노크하십니다. 주님께서 위로하시고, 부르시고, 새롭고 화해된 삶의 새싹을 가져다주십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가슴을 노크하고 가슴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Therefore, after the homily, a time of silence enables one to settle the seed received in the spirit, so that resolutions of adherence are born to what the Spirit has suggested to each one. Silence after the homily — there must be a beautiful silence there — and each one must think about what he has heard.

그래서 강론 후에 침묵의 시간이 있고 이 시간은 영혼으로 받아들인 씨앗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각자에게 제안하신 것을 지킬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강론 후의 침묵 시간에 - 아름다운 침묵이 있어야 합니다. - 각자는 자신이 들은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After this silence, how does the Mass continue? The personal response of faith is inserted in the Church’s profession of faith, expressed in the “Creed.” We all recite the “Creed” in the Mass. Recited by the whole assembly, the Symbol manifests the common response to what has been heard together of the Word of God (Cf.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85-197). There is a vital nexus between listening and faith.

이 침묵 다음에 미사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사도신경”으로 표현되는 교회의 신앙고백에 개인적인 신앙의 응답이 삽입됩니다. 우리 모두는 미사 중에 “사도신경”을 낭송합니다. 모든 회중이 낭송한 상징은 모두 함께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공동 응답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85-197 참조) 거기에는 경청과 믿음과의 필수적인 결합이 있습니다. 

They are united. The latter — faith –, in fact, is not born from the imagination of human minds but, as Saint Paul reminds, “from what is heard, and what is heard comes by the preaching of Christ” (Romans 10:17). Faith is nourished, therefore, with listening and leads to the Sacrament. So the recitation of the “Creed” is such that it makes the liturgical assembly “turn to meditate and profess the great mysteries of the faith, before their celebration in the Eucharist” [Ordinamento Generale del Messale Romano, (OGMR) 67].

경청과 믿음이 결합됩니다. 믿음은 사실 인간의 생각의 상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 바오로가 환기시킨 바와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 10,17) 믿음은 경청으로 자라고 성사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낭송은 전례적 회중이 성체성사 전에 “신앙의 위대한 신비를 묵상하고 고백하도록” 주의를 돌립니다. (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67)  

The Symbol of faith links the Eucharist to Baptism, received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nd reminds us that the Sacraments are comprehensible in the light of the faith of the Church.

믿음의 상징은 성체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와 연결하고, 우리에게 성사들은 교회의 믿음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고 환기시킵니다.

The response to the Word of God received with faith is then expressed in the common supplication, called the Universal Prayer, because it encompasses the needs of the Church and of the world (Cf. OGMR, 69-71; Introduction to the Lectionary, 30-31). It is also called Prayer of the Faithful.

믿음과 함께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은 이제 공동청원으로 표현됩니다. 이 공동청원기도는 보편지향기도라고 하는데 이는 교회와 세상의 필요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로마미사경본 총지침 69-71, 미사독서목록지침, 소개 30-31 참조) 이는 또한 신자들의 기도라고 칭합니다.  

The Fathers of Vatican II wished to restore this prayer after the Gospel and the homily, especially on Sunday and feasts, so that “with the participation of the people, prayers are said for the Holy Church, for those that govern us, for those that find themselves in various needs, for all men and for the salvation of the whole world” (Constitution Sacrosanctum Concilium, 53; Cf. I Timothy 2:1-2). Therefore, under the guidance of the Priest who introduces and concludes, ”the people, exercising their own baptismal priesthood, offer prayers to God for the salvation of all” (OGMR, 69). And after the individual intentions, proposed by the Deacon or a reader, the assembly unites its voice invoking: “Hear us, O Lord.”

제2차 바티칸 교부들은 특별히 주일과 축일에 복음과 강론 후에 이 기도를 다시 포함시키기를 원했습니다. “백성들의 참여로, 거룩한 교회, 정치가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53; 디모테오 1서 2,1-2) 그래서 도입하고 끝내는 사제의 안내에 따라 “사제직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로마미사경본 총지침 69) 부제 또는 개인이 드리는 개인적인 지향 후에 회중은 목소리를 합쳐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We remember, in fact, all that the Lord Jesus has said to us: “If you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ask whatsoever you will, and it shall be done for you” (John 15:7). However, we don’t believe this, because we have little faith.” But, Jesus says, if we had faith as a grain of mustard, we would receive everything. “Ask whatever you will, and it shall be done for you.” And in this moment of the Universal Prayer after the Creed, is the moment to ask the Lord for the most intense things in the Mass, the things of which we are in need, what we want.  “It shall be done for you,” in one way or another, but “It shall be done for you.” “All is possible for one who believes,” said the Lord.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 15,7) 그러나 약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청하면 너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사도신경이 끝난 후, 보편지향기도의 이 순간이 주님께 미사 중에 가장 집중적인 것들 즉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을 청하는 순간입니다. “너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What did that man answer, whom the Lord addressed to say this word — all is possible for one who believes? He said: “I believe, Lord. Help my unbelief.” And we must pray with this spirit of faith: “I believe, Lord, help my unbelief.” Mundane logical pretensions, instead, don’t take off to Heaven, just as self-referential requests remain unheard (Cf. James 4:2-3). The intentions for which the faithful people are invited to pray must give voice to concrete needs of the ecclesial community and of the world, avoiding taking recourse to conventional or myopic formulas. The “Universal” Prayer, which concludes the Liturgy of the Word, exhorts us to make our own God’s look, who takes care of all His children.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사람은 어떻게 답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저의 믿음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이런 믿음의 정신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저의 믿음을 도와주십시오.” 자기지시적인 기도가 먹히지 않듯이 세속적인 논리적 허세는 천국으로 이륙하지 못합니다. (야고보 4,2-3 참조)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도록 불림을 받는 기도지향은 교회공동체와 세상의 구체적인 필요를 말해야 하고 인습적이고 근시안적인 공식을 피해야합니다. 말씀전례의 끝을 장식하는 “보편지향” 기도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모든 자녀들을 염려하시는 하느님의 마음과 같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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