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영어성경묵상

교황님의 강론

관리자
2018.02.06 22:02 3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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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Homily - General Audience on January 31,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We continue today with the catecheses on the Mass. After having reflected on the rites of introduction of the Mass, we now consider the Liturgy of the Word, which is a constitutive part because, in fact, we gather to listen to what God has done and still intends to do for us. It’s an experience that happens “directly” and not by having heard, because “when Sacred Scripture is read in Church, God Himself speaks to His people and Christ, present in the Word, proclaims the Gospel” (Ordinamento Generale del Messale Romano, 29; Cf. Constitution Sacrosanctum Concilium, 7; 33).

 

교황님의 강론 (2018.1.31.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미사의 교리를 계속합니다. 미사 시작 예식을 묵상한 후에 이제 말씀전례를 살펴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경청하기 위해 모입니다. 그래서 말씀전례는 미사의 필수 구성부분입니다. “성경이 교회에서 봉독될 때, 하느님께서 몸소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기때문에 그저 듣는 것이 아니고, 이는 직접일어나는 체험입니다. (로마 미사전례서 총지침, 29; 전례헌장, 7;33 참조)

 

And how often, while the Word of God is read, one comments: “Look at him . . . , look at her . . . , look at the hat she is wearing: It’s ridiculous . . . “And they begin to make comments. Isn’t that true? Should comments be made while the Word of God is being read? [They respond: “No!]. No, because if you gossip with people you don’t listen to the Word of God. When the Word of God is read in the Bible the First Reading, the Second, the Responsorial Psalm and the Gospel we must listen, open our heart, because it’s God Himself who is speaking to us, and we must not think of other things or talk about other things. Understood? . . . I will explain to you what happens in this Liturgy of the Word.

 

하느님의 말씀이 봉독될 때 어떤 사람은 저 사람 좀 봐.....저 여자를 봐... 저 여자가 쓰고 있는 모자 좀 봐.... 꼴볼견야...”라고 속삭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봉독될 때 이렇게 속삭이면 되겠습니까? [군중이 아니오!” 라고 답함]. 아니지요, 옆 사람과 얘기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안의 하느님의 말씀이 봉독될 때... 1독서, 2독서, 화답송, 그리고 복음 - 우리는 가슴을 열고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시지요? 이제 이 말씀전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The pages of the Bible cease to be a writing to become living word pronounced by God. It’s God that, through the person that reads, speaks to us and questions us, who listen with faith. The Spirit “who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Creed) and has inspired the sacred authors, acts so that “that the Word of God truly operates in hearts what He makes resound in ears” (Lectionary, Introd., 9).

 

성경의 페이지들은 글이기를 중지하고 하느님께서 선포하신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성경을 봉독하는 사람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고 경청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질문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신경) 거룩한 성경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하느님께서 귀에 울리도록 하신 말씀이 진정 가슴에 새겨지도록하십니다. (성서일과, 소개, 9).

 

However, to listen to the Word of God it’s necessary to have an open heart to receive the word in the heart. God speaks and we listen to Him, to then put into practice what we have heard. It’s very important to listen. Sometimes, perhaps, we don’t understand well because there are some Readings that are a bit difficult. However, God speaks the same to us in another way. [It’s necessary to be] in silence and to listen to the Word of God. Don’t forget this. At Mass, when the Readings begin, we listen to the Word of God.

 

그러나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 가슴으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분께 집중합니다. 그러고 우리가 들은 말씀을 실행에 옮깁니다. 경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끔 어떤 말씀은 좀 어려워서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침묵 가운데 하느님 말씀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미사에서 독서가 봉독될 때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We need to listen to Him! It is, in fact, a question of life, as the incisive expression well reminds that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from the mouth of God” (Matthew 4:4) the life that the Word of God gives us. In this connection, we speak of the Liturgy of the Word as the “table” that the Lord prepares to feed our spiritual life. That of the Liturgy is an abundant table, which draws widely from the treasures of the Bible (Cf. SC , 51) be it of the Old or of the New Testament, because in them the Church proclaims the one and the same mystery of Christ (Cf. Lectionary, Introd., 5).

 

그분께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오 4,4) 라는 예리한 표현이 환기시키듯이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생명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차려주시는 음식 식탁으로 말씀전례를 얘기합니다. 전례의 상은 풍성한 식탁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성경의 보물을 (전례헌장, 51 참조) 두루 차리고, 그 안에서 교회는 하나이며 동일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성서일과, 소개, 5 참조)

 

We think of the richness of the biblical Readings offered by three Sunday cycles that, in the light of the Synoptic Gospels, accompany us in the course of the Liturgical Year: a great richness. I wish to recall here the importance of the Responsorial Psalm, whose function is to foster meditation on all that was heard in the Reading that preceded it. It’s good that the Psalm is enhanced with the song, at least in the refrain (Cf. OGMR, 61; Lectionary, Introd., 19-22).

 

우리는 공관복음의 빛 안에서 전례 해의 도정에 우리를 동반하는 3년을 단위로 반복되는 성경독서의 풍요함을 생각합니다. 아주 풍요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화답송의 중요함을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화답송의 기능은 앞의 독서에서 들은 모든 것을 묵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편이 노래로, 적어도 후렴만이라도, 노래로 증대되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 미사전례서 총지침, 29; 성서일과 19-22)

 

The liturgical proclamation of the same Readings, with the songs deduced from Sacred Scripture, expresses and fosters ecclesial communion, accompanying the path of each and all. One understands, therefore, why subjective choices, such as the omission of Readings or their substitution with non-biblical texts, are prohibited. I’ve heard that some, if there is news, read the newspaper, because it’s the news of the day. No! The Word of God is the Word of God! We can read the newspaper later, but there, the Word of God is read.

 

성경에서 추론된 노래와 함께 같은 독서의 전례적 선포는 각자와 모든 사람들의 도정을 동반하는 교회적 통교를 표현하고 조장합니다. 그래서 독서를 생략한다든가 성경이 아닌 것으로 대체하는 주관적인 결정이 왜 금지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제가 어떤 소식이 있을 때 그 소식이 아주 중요해서 신문을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안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신문은 나중에 읽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It’s the Lord who speaks to us. To substitute that Word with other things, impoverishes and compromises the dialogue between God and His people in prayer. On the contrary, [required is] the dignity of the pulpit and the use of the Lectionary,[1] the availability of good readers and psalmists. However, it’s necessary to find good readers! those that are able to read, not those that read [mangling the words] and nothing is understood. It’s so good readers <are needed>. They must prepare themselves and try before the Mass to read well. And this creates a receptive atmosphere of silence [2].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 말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과의 기도 중의 대화를 빈약하게 하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독서대의 권위와 독서집의 사용이 필요하고 성경봉독을 잘하는 사람과 시편을 잘 노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경봉독을 잘하는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잘 읽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미사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여 잘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침묵 중에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We know that the Lord’s word is an indispensable aid not to get lost, as the Psalmist well recognizes that, addressing the Lord, confesses: “Thy word is a lamp for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Psalm 119:105). How can we face our earthly pilgrimage, with its toils and trials, without being regularly fed and illumined by the Word of God that resounds in the Liturgy?

 

우리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시편작가는 하느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 119.105) 전례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기적으로 양분을 받고 빛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고역과 시험으로 가득 찬 지상의 순례를 대면할 수 있을까요?

 

It’s certainly not enough to listen with the ears, without receiving in the heart the seed of the divine Word, enabling it to bear fruit. Let us remember the parable of the sower and the different results according to the different types of soil (Cf. Mark 4:14-20). The action of the Spirit, which renders the response effective, is in need of hearts that allow themselves to be worked and cultivated, so that what is heard at Mass passes in daily life, in keeping with the Apostle James’ admonition: “Be doers of the word, and not hearers only, deceiving yourselves” (James 1:22). The Word of God makes a path within us. We hear it with the ears and it passes to the heart. It doesn’t stay in the ears; it must go to the heart, and from the heart it passes to the hands, to good works. This is the course that the Word of God follows: from the ears to the heart to the hands. Let us learn these things. Thank you!

 

하느님의 말씀의 씨를 받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슴으로 받지 않고 귀로 경청하는 것으로는 분명 충분하지 않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과 다른 형태의 땅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 예화를 기억해봅시다. (마르코 4,14-20) 응답을 효과적으로 만드시는 성령의 활동은 가슴을 필요로 합니다. 사도 야고보의 권고처럼 미사에서 들은 말씀이 일상의 삶에 들어오기 위해서 가슴으로 느끼고 깨우쳐야 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보 1,22)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통로를 만듭니다. 우리는 말씀을 귀로 듣고 말씀은 가슴으로 갑니다. 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가슴에서 손으로, 선한 행동으로 가야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의 코스입니다. 귀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손으로. 이것을 배웁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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