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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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강론

관리자
2018.01.30 14:51 37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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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Homily - General Audience on January 24,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his audience will be held in two connected places: with you, here in the square, and a group of children who are unwell, in the Hall. They will see you, and you will see them: and in this way we are linked up. Let us greet the children who are in the Hall: it was best for them not to be out in the cold, and so they are there.

 

교황님의 강론 (2018.1.24.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접견은 서로 연결된 두 곳에서 진행됩니다. 여기 광장의 여러분과 홀에 몸이 좋지 않은 어린들과 함께 합니다. 어린이들은 여러분을 볼 수 있고 여러분도 그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홀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인사하시지요. 추운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들이 홀에 있습니다.

 

I returned two days ago from my Apostolic Journey to Chile and Peru. Applause for Chile and for Peru! Two good, good populations I thank the Lord as everything went well: I was able to meet the People of God journeying in those lands and even those who are not journeying, who are at a bit of a standstill but they are good people and to encourage the social development of those countries. I reiterate my gratitude to the civil authorities and to the bishops, who welcomed me with great care and generosity; as well as to all collaborators and volunteers. Think that in each of the two countries there are more than 20 thousand volunteers: 20 thousand and more in Chile, 20 thousand in Peru. Good people: mostly young.

 

저는 칠레와 페루에 사도적 여정을 마치고 이틀 전에 돌아왔습니다. 칠레와 페루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냅니다. 두 곳의 선한 국민들에게...... 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여정에 있는 그 땅의 하느님 백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여정에 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약간의 정지 상태에 있지만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의 사회적 발전을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민기관들과 모든 배려와 너그러움으로 저를 맞아 준 주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협조자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각 나라에 2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칠레에 2만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있었고, 페루에 2만 명이 있었습니다. 선하고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My arrival in Chile was preceded by several protest demonstrations, for various reasons, as you will have read in the newspapers. And this made the motto of my visit even more current and living: “Mi paz os doy I give you my peace”. These are Jesus’s words addressed to the disciples, which we repeat in every Mass: the gift of peace, which only the dead and risen Jesus can give to those who entrust themselves to Him. It is not just some of us who need peace: the world too, today, in this piecemeal third world war please, let us pray for peace!

 

여러분이 신문에서 보시게 되겠지만, 제가 칠레에 도착하기 전에 여러 이유로 서너 번의 데모가 있었습니다. 이런 데모들이 저의 방문 모토인 당신에게 평화를 줍니다가 좀더 시의적절하고 생생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모든 미사 때에 우리가 되풀이하는 말씀입니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만 자신을 그분께 맡긴 사람들에게 하실 수 있는 평화의 선물입니다. 평화를 필요로 하는 것은 여기의 우리뿐이 아닙니다. 오늘날 단편적인 세계 전쟁 상태에 있는 세상도 평화를 필요로 합니다. 자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In the meeting with the political and civil Authorities of the country, I encouraged the path of Chilean democracy, as a meeting space for solidarity and capable of including diversity; for this purpose I indicated as a method the way of listening: in particular, listening to the poor, the young and the elderly, immigrants, and also listening to the earth.

 

정치와 시민 기관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연대를 위한 자리로서의 칠레의 민주화의 도정을 격려하였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저는 방법을 가리켰는데 그것은 경청의 길입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젊은 사람들, 노인들, 이민자들, 그리고 지구에 경청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In the first Eucharist, celebrated for peace and justice, the Beatitudes resounded, especially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 (Mt 5: 9). A Beatitude to witness by means of the style of proximity, closeness; sharing and thus strengthening, with the grace of Christ, the fabric of the ecclesial community and of society as a whole.

 

평화와 정의를 위해 거행된 첫 미사에서 진복팔단이 특히 복 되도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로 불릴 것이다.” (마태오 5,9) 가득 울렸습니다. 가까움과 친밀의 방법으로 증거 하는 진복팔단,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나눔을 통해서 교회공동체와 사회공동체를 하나로 엮는 구조를 강화하는 진복팔단이 가득 울렸습니다.

 

In this style of proximity, gestures count more than words, and an important gesture I was able to make was visiting the women’s prison in Santiago: the faces of those women, many of them young mothers, with their little ones in their arms, expressed in spite of everything so much hope. I encouraged them to demand, of themselves and of the institutions, a serious journey of preparation for reintegration, as a horizon giving meaning to their daily suffering.

 

가까움의 방식에서 몸짓이 말보다 더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몸짓은 산티아고의 여자교도소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젊은 엄마들이었고 그들은 어린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여성들의 얼굴에는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희망이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자신들에게 그리고 기관들에게 그들의 일상의 고통에 의미를 주는 수평으로서 회복을 위한 심각한 준비의 여정을 요구하도록 촉구했습니다.

 

We cannot think of a prison, any prison, without this dimension of reintegration, because if there is not this hope of social reintegration, prison is a torture without end. Instead, when you work to reintegrate even those who are serving life sentences can be reintegrated through the work of the prison and of society, dialogue opens up. But a prison must always have this dimension of reintegration, always.

 

우리는 이러한 회복 (복구)의 차원 없는 어떠한 교도소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복구의 이런 희망이 없으면 교도소는 끝이 없는 고문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우리가 교도소와 사회의 노력을 통해서 복구를 위해 일할 때 - 종신형을 받은 사람들까지도 복구할 수 있습니다 - 대화의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교도소는 항상 복구의 이 차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With the priests and consecrated persons and with the bishops of Chile, I experienced two very intense meetings, made even more fruitful by the shared suffering of some wounds afflicting the Church in that country. In particular, I confirmed my brothers in rejecting any compromise on the sexual abuse of minors, and at the same time in trusting in God, Who through this harsh trial purifies and renews His ministers.

 

저는 칠레의 사제와 수도자와 그리고 주교들과 두 번의 아주 집중적인 모임을 가졌고, 그 나라의 교회를 괴롭히는 상처들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더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소수자들의 성적인 문란에 대한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동시에 이러한 어려운 시험을 통해서 그분의 사목자들을 정화하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하느님을 믿을 것을 확실히 했습니다.

 

The other two Masses in Chile were celebrated, one in the south and one in the north. The one in the south, in Araucanía, the land where the Mapuche Indians live, transformed into joy the drama and hardships of this people, launching an appeal for a peace that is harmony in diversity, and for the repudiation of all violence. The one in the north, in Iquique, between the ocean and the desert, was a hymn to the meeting among peoples, expressed in a singular way in popular religiosity.

 

칠레에서 남쪽과 북쪽에서 두 번의 다른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남쪽의 미사는 마푸체 인디안들이 사는 땅인 아라우카니아에서 열렸는데, 그 미사에서 그곳 사람들의 고통과 생활이 기쁨으로 변하였고, 다양성의 조화인 평화에 대한 호소와 모든 폭력의 거부에 대한 호소를 시작하였습니다. 북쪽의 미사는 바다와 사막의 사이에 있는 이키케에서 열렸으며, 그 미사는 신자들의 모임에 울려 퍼진 찬미가였고, 그 찬미가는 대중의 독실한 믿음 안에 한 목소리로 표현되었습니다.

 

The meetings with young people and with the Catholic University of Chile responded to the crucial challenge of offering great meaning to the life of the new generations. I left the programmatic words of Saint Albert Hurtado to the young people: “What would Christ do in my place?”. And at the University I proposed a model of integral formation, translating Catholic identity into the capacity to participate in the building of united and plural societies, where conflicts are not hidden but managed in dialogue.

 

젊은이들과 칠레가톨릭 대학생들과의 모임은 새로운 세대의 삶에 큰 의미를 제시해야겠다는 중대한 도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저는 성 알베르토 우르타도의 프로그램적인 다음의 말을 그들에게 남겼습니다. “나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대학에서의 미사에서는 통합적 양성의 표본을 제시했습니다. 즉 가톨릭 정체성을 통일된 복합사회 건설에 참여하는 역량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어 대화로 풀어나갑니다.

 

There are always conflicts: even at home; always. But bad treatment of conflicts is even worse. Conflicts must not be brushed under the bed: conflicts must come to light, be faced and resolved with dialogue. Think of the little conflicts you will certainly have at home: they must not be hidden, but faced. Find the moment, and speak: conflict is resolved in this way, with dialogue.

 

갈등은 항상 있습니다. 가정에도,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을 다루는 것이 더 어려운 부분입니다. 갈등은 침대 밑으로 털어내면 안됩니다. 갈등은 밝은 데로 가지고 나와 대면하고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가정에 가지고 있는 작은 갈등을 생각해봅시다. 그 갈등을 감추면 안 되고 대면해야 합니다. 기회를 잡아서 말하십시오. 갈등은 대화로 이렇게 해결됩니다.

 

In Peru the motto of the Visit was: “Unidos por la esperanza United by hope”. United not in a sterile uniformity, everyone the same, this is not union; but in all the richness of the differences we inherit from history and culture. The meeting with the peoples of the Peruvian Amazon was emblematic of this, and also gave rise to the itinerary of the Pan-Amazon Synod convened for October 2019, and it was also witnessed by the moments lived with the people of Puerto Maldonado and the children of the “House of the Little Prince”. Together we said “no” to economic colonization and ideological colonization.

 

페루 방문의 모토는 희망으로 하나 되기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되는 획일화된 연합이 아닙니다. 이것은 연맹이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계승한 다양성의 모든 풍요함 속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페루 아마존 사람들과의 모임은 이것의 상징이었고, 또한 201910월에 개최될 범아마존 시노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또한 프에르토 말도나도 사람들과 작은 왕자들의 집의 어린이들과 함께 지낸 순간들로 그것이 증거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경제적 식민지화와 이념적 식민지화에 아니오라고 말했습니다.

 

Speaking to the political and civil authorities of Peru, I appreciated the environmental, cultural and spiritual heritage of that country, and I focused on the two issues that most seriously threaten it: ecological-social degradation, and corruption. I don’t know if you have heard talk here of corruption I don’t know It is not only found in those places: here too, and it is more dangerous than the ’flu! It mixes things up and ruins hearts. Please, no to corruption. And I remarked that no-one is exempt from responsibility in the face of these two scourges, and that the commitment to counter them concerns everyone.

 

페루의 정치 시민 기관들에게 말할 때, 저는 그 나라의 환경적, 문화적, 정신적 유산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그것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두 가지 즉 생태적 사회적 저급화 그리고 부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이곳의 부패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들뿐만 아니라 부패는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이곳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독감보다 더 위험합니다. 그것은 일을 혼란스럽게 하고 가슴을 파괴합니다. 제발 부패는 안 됩니다. 저는 아무도 이 두 골칫거리 앞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노력은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I celebrated the first Mass in Peru by the ocean, in the city of Trujillo, where last year the storm known as the “Niño costiero” struck the population hard. Therefore, I encouraged the people to react to this, but also to other storms such as criminality, and the lack of education, work and safe housing. In Trujillo I also met with the priests and consecrated persons of northern Peru, sharing with them the joy of the calling and the mission, and the responsibility of communion in the Church. I urged them to be rich in memory and faithful to their roots. And among these roots there is the popular devotion to the Virgin Mary. Again in Trujillo a Marian celebration was held in which I crowned the Virgin of the Gate, proclaiming her “Mother of Mercy and Hope”.

 

바닷가 트루히요에서 페루의 첫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곳은 작년에 코스티에로 어린이라는 이름의 폭풍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지역입니다. 그곳 시민들에게 이런 폭풍에 대응할 뿐 아니라, 다른 폭풍 즉 범죄, 부족한 교육, 일자리, 그리고 안전한 집에 대응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트루히요에서 저는 또한 북부 페루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만나서 그들과 성소와 사명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교회와의 통교에 대한 책임감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들의 원천에 대한 풍요로운 기억을 갖고 그 원천에 충실하도록 권했습니다. 그 원천들 중에는 동정마리아에 대한 대중적인 헌신이 있습니다. 트루히요에서 성모님 기념식이 있었고 거기에서 저는 동정녀에게 자비와 희망의 어머니라고 선언하며 문의 동정녀에게 왕관을 쒸워 드렸습니다.

 

The final day of the trip, last Sunday, took place in Lima, with a strong spiritual and ecclesial accent. In the most famous Shrine of Peru, where the painting of the Crucifixion entitled “Señor de los Milagros” is venerated, I met about 500 cloistered women religious, of the contemplative life: a true “lung” of faith and prayer for the Church and for society as a whole. In the Cathedral I performed a special act of prayer through the intercession of the Peruvian Saints, which was followed by the meeting with the bishops of the country, to whom I proposed the exemplary figure of Saint Turibius of Mogrovejo.

 

여정의 마지막 날인 마지막 일요일은 리마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강력한 영적, 교회적 행사였습니다. “기적의 주님이란 제목의 그림이 공경되는 페루의 가장 유명한 성전에서 저는 500명의 봉쇄수도원의 관상의 삶을 사는 수녀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사회 전체를 위한 진정한 믿음과 기도의 허파 역할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주교좌성당에서 저는 페루의 성인들의 중재를 통해 특별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주교들과 만나서 그들에게 성 투리비오 데 모그로베호를 본을 보도록 제의했습니다.

 

I also pointed out to the young Peruvians the saints as men and women who did not waste time “retouching” their own image, but instead followed Christ, Who looked on them with hope. As always, the word of Jesus gives full meaning to everything, and so too the Gospel of the last Eucharistic celebration summarized God’s message to His people in Chile and in Peru: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Mk1:15 ). Thus the Lord seemed to say you will receive the peace that I give you and you will be united in my hope. This is, more or less, my summary of this trip. Let us pray for these two sister Nations, Chile and Peru, that the Lord bless them.

 

저는 또한 젊은 페루인들, 자신들의 이미지를 다시 소질 하는데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그들을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남녀 젊은이들로서의 성인들을 가리켰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한 뜻을 줍니다. 마지막 미사성제에서의 복음말씀도 칠레와 페루의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느님 메시지의 요약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 1,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는 평화를 받을 것이며 나에 대한 희망 안에서 일치를 이룰 것이다. 이것이 대략 이번 여행의 요약입니다. 우리 모두 이 자매 국가인 칠레와 페루를 위해 주님께서 축복을 주십사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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