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하우톤


 

믿음의 길

 
 
작성일 : 18-01-06 14:30
교황님의 강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6  

평화를 빕니다.

 

새해에 드리는 첫 메일입니다. 새해에 주님의 축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황님의 강론은 미사성제의 시작 예식의 참회행위 부분에 대한

교리입니다.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에 이어 우리가 바치는 고백 기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십니다.

 

새해의 첫 강론으로 저에게는 좋은 묵상인 것 같습니다.

 

윤영학 아오스딩 드림

 

Pope's Homily - General Audience on January 7, 2018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aking up the catecheses on the Eucharistic Celebration, today we reflect, in the context of the rites of introduction, on the penitential act. In its sobriety, it fosters the attitude with which to dispose oneself to celebrate worthily the holy mysteries, namely, acknowledging our sins before God and brethren; acknowledging that we are sinners. In fact, the priest’s invitation is addressed to the whole community in prayer, because we are all sinners.

 

교황님 강론 (2018.1.7.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사성제에 대한 교리를 계속하면서 오늘 우리는 시작예식의 참회부분을 묵상하겠습니다. 진지함 안에서 참회행위는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기 위해서 자신을 내어놓는 태도를 조성합니다. ,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인정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사실, 사제는 공동체 전체를 기도록 초대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What can the Lord give to one whose heart is already full of himself, of his success? Nothing, because one who is presumptuous is incapable of receiving forgiveness, satiated as he is with his presumed justice. We think of the parable of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where only the latter the publican goes home justified, namely, forgiven (Cf. Luke 18:9-14). One who is aware of his miseries and lowers his eyes with humility, feels God’s merciful look resting on him. We know from experience that only one who is able to acknowledge his mistakes and asks for forgiveness, receives the understanding and forgiveness of others.

 

마음이 이미 자신으로 꽉 찬 사람, 자신의 성공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 주님께서 무엇을 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주지 못하십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건방진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예화를 생각해봅니다. 세리만이 정의로워져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루카 18,9-14) 자신의 고통을 알고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만이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눈길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도 경험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To listen in silence to the voice of conscience enables us to recognize that our thoughts are far from divine thoughts, that our words and our actions are often worldly, guided, that is, by choices that are contrary to the Gospel. Therefore, at the beginning of the Mass, we carry out communally the penitential act through a formula of general confession, pronounced in the first person singular. Each one confesses to God and to brethren “to have sinned much in thoughts, words, deeds and omissions.” Yes, also in omissions, namely, of having neglected to do the good that one could have done.

 

양심의 목소리를 침묵가운데 경청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과 동 떨어져 있고, 복음에 반대되는 선택들에 이끌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자주 세상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사의 첫 부분에- 우리는 일인칭으로 일반고백의 형식을 통해 공동으로 참회 행위를 수행합니다. 각자는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면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할 수 있었던 선을 행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의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Often we feel we are good because we say “I haven’t done wrong to any one.” In reality, it’s not enough not to have wronged our neighbor, we must choose to do good taking up occasions to give good witness that we are disciples of Jesus. It’s good to stress that we confess, be it to God or to brothers, that we are sinners: this helps us to understand the dimension of sin that, while it separates us from God, also divides us from our brethren and vice versa. Sin breaks: it breaks the relationship with God and it breaks the relationship with brethren, the relationship in the family, in society and in the community: Sin always breaks, separates, divides.

 

가끔 우리는 우리가 선하다고 느낍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증거 할 기회를 택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느님께든 형제들에게든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차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형제들과도 단절시킵니다. 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형제들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사회 안에서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죄는 항상 깨뜨리고, 분열시키고, 갈라놓습니다.

 

The words we say with the mouth are accompanied by the gesture of beating our breast, acknowledging that I have sinned by my own fault, and not that of others. It often happens in fact that, out of fear and shame, we point the finger to accuse others. It costs to admit that we are culpable, but it does us good to confess it sincerely, to confess our sins. I remember a story, which an old missionary told, of a woman who went to confession and began to tell the errors of her husband; then she went on to tell the errors of her mother-in-law and then the sins of neighbors. At a certain point, the confessor said to her: “But, lady, tell me, have you finished? Very good: you have finished with others’ sins. Now begin to tell yours.” We must tell our sins!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나 자신의 잘못으로 죄지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가슴을 치면서 말합니다. 가끔 우리는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립니다. 우리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그것을 고백하는 것,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노 선교사가 말해준 얘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여인이 고백소에서 남편의 잘 못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시어머니의 잘못을 고하고 이웃의 잘못을 얘기했습니다. 그때 고해사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이제 끝났습니까?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다 얘기했으니까 이제 자매님의 죄를 고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얘기해야 합니다.

 

After the confession of sin, we beseech the Blessed Virgin Mary, the Angels and the Saints to pray to the Lord for us. In this also, the communion of Saints is precious: namely, the intercession of these “friends and models of life” (Preface of November 12) sustains us in the journey towards full communion with God, when sin will be definitively annihilated.

 

죄의 고백 후에 우리는 복된 동정 마리아께,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우리를 위해 주님께 기도해달라고 청합니다. 성인들의 통교가 귀중합니다. 말하자면, 친구들과 삶의 모범자들의 중재가 (1112일 서문), 하느님과의 온전한 통교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하느님과의 온전한 통교 때 죄는 완벽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Beyond the “I confess,” the penitential act can be done with other formulas, for instance: “Have mercy upon us, O Lord / We have sinned against you. / Show us thy steadfast love, O Lord. / And grant us thy salvation” (Cf. Psalm 123:3; 85:8; Jeremiah 14:20). Especially on Sunday, the blessing and the aspersion of water can be carried out in memory of our Baptism (Cf. OGMR, 51), which cancels all sins. And, as part of the penitential act, it’s also possible to sing the Kyrie eleison: with the ancient Greek expression, we acclaim the Lord Kyrios and implore His mercy (Ibid., 52).

 

나는 고백합니다,” 외에, 참회의 행위는 다른 형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구원을 주소서. (시편 123,3; 85,8; 예레미야 14,2 참조) 특히 주일에는 세례를 기념하기 위해서 성수의 축성과 살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죄를 없앱니다. 참회 행위의 일부로서 기리에 엘레이손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옛 그리스의 표현으로 우리는 주님께 키리오스 노래하고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Sacred Scripture offers us luminous examples of “penitent” figures that, looking into themselves after having committed a sin, find the courage to take off the mask and open themselves to the grace that renews the heart. We think of King David and of the words attributed to him in the Psalm: “Have mercy on me, O God, according to thy steadfast love; according to thy abundant mercy blot out my transgressions” (51:3).

 

성경은 우리에게 참회자의 선명한 모범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죄를 지은 후에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를 내어 가면을 벗고, 마음을 새롭게 해주는 은총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엽니다. 우리는 다윗왕과 시편에 나온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새겨봅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편 51,3)

 

We think of the Prodigal Son who returns to the Father; or to the publican’s invocation: “God, be merciful to me a sinner” (Luke 18:13). We think also of Saint Peter, of Zacchaeus, of the Samaritan woman. To measure oneself with the frailty of the clay of which we are kneaded is an experience that strengthens us: while it makes us deal with our weakness, it opens the heart to invoke the divine mercy, which transforms and converts. And this is what we do in the penitential act at the beginning of the Mass.

 

우리는 아버지한테 돌아온 탕자를 그리고 세리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루카 18,13) 우리는 또한 베드로 성인, 자캐오, 사마리아의 여인을 생각합니다. 우리를 만들 때 쓰인 부서지기 쉬운 흙으로 우리 자신을 측정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체험일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인지하게 되고 우리의 가슴을 열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도록 이끌고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회개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미사 시작예식의 참회행위에서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