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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

 
 
작성일 : 17-11-25 23:24
교황님의 강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82  

Pope's Homily - General Audience on November 22, 2017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Continuing with the catecheses on the Mass, we can ask ourselves: What is the Mass essentially? The Mass is the memorial of Christ’s Paschal Mystery. It makes us participants in His victory over sin and death and gives full meaning to our life.

 

교황님의 강론 (2017. 11. 22.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사에 대한 강론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합니다. “미사는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미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기념입니다. 미사는 죄와 죽음에 대한 그분의 승리에 우리를 참여시키고, 우리의 삶에 충만한 의미를 줍니다.

Therefore, to understand the value of the Mass we must then understand, first of all, the biblical meaning of the “memorial.” It is “not merely the recollection of past events, but in a certain sense renders them present and real. Thus, in fact, Israel understands its liberation from Egypt: every time Passover is celebrated, the Exodus events are made present to the memory of believers, so that they may conform their lives to them.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363). With His Passion,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Jesus Christ has brought Passover to fulfillment.

 

미사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기념의 성서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의미로는 그 사건들을 현존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사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파스카를 기념할 때마다 이집트 탈출사건은 믿는 이들의 기억 속에 현존하게 되고 그 사건에 삶을 일치시킵니다.” (가톨릭 교리서, 1363) 그분의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를 실현시키십니다.

 

And the Mass is the memorial of His Passover, of His “exodus,” which He carried out for us, to make us come out of slavery and to introduce us in the Promised Land of eternal life. It’s not merely a recollection no, it’s more: it makes present what happened 20 centuries ago. The Eucharist always leads us to the summit of God’s action of salvation: the Lord Jesus, making Himself broken bread for us, sheds on us all His mercy and His love, as He did on the cross, so as to renew our heart, our existence and our way of relating to Him and to brothers. Vatican Council II states: “Every time that the sacrifice of the cross with which Christ, our Paschal Lamb, was immolated , is celebrated on the altar, the work of our Redemption is effected”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3).

 

미사는 그분의 파스카, 그분의 탈출의 기념입니다. 그분은 파스카와 탈출을 우리를 위해, 우리를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된 땅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20세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실제로 만듭니다. 성체는 항상 우리를 하느님의 구원행위의 절정으로 인도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부서진 빵이 되어서,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그분의 자비, 그분의 사랑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마음, 우리의 존재, 그리고 그분과 형제들과 관련하여 우리가 취하는 태도를 새롭게 하십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희생을 제대 위해서 기념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3)

 

Every celebration of the Eucharist is a ray of that sun without a sunset, which is Jesus Risen. To take part in the Mass, in particular on Sunday, means to enter into the victory of the Risen One, to be illumined by His light, warmed by His warmth. Through the Eucharistic Celebration, the Holy Spirit makes us participants in the divine life, which is able to transfigure our whole mortal existence. And in His passage from death to life, from time to eternity, the Lord Jesus draws us with Him to <celebrate> Easter. Easter is celebrated>in the Mass.

 

모든 성체성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지지 않는 태양의 빛입니다. 특히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의 빛을 받으며, 그분의 온기를 받으며 부활하신 분의 승리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참여자로 만드시고, 그것은 우리의 온 육체적 존재를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유한에서 영원으로 변하는 통로를 지나신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부활축제를 함께 지내도록 하십니다. 미사에서 부활축제가 거행됩니다.

 

At Mass, we are with Jesus, dead and risen, and He draws us forward, to eternal life. In the Mass, we are united to Him. Rather, Christ lives in us and we live in Him.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says Saint Paul ,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atians 2:19-20). Paul thought thus.

 

미사에서 우리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미사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티아 2,19-20) 바오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In fact, His Blood frees us from death and from the fear of death. It liberates us not only from the dominion of physical death but of spiritual death, which is the evil, the sin that takes hold of us every time that we fall victims of our sin or of that of others. And then our life is polluted, it loses <its> beauty, it loses meaning, it withers.

 

사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시킵니다. 우리를 육체적 죽음의 지배로부터 뿐만 아니라 영적인 죽음의 지배로부터 해방 시킵니다. 영적인 죽음은 악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죄 또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희생될 때마다 우리를 움켜쥐는 죄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은 오염되고,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고, 의미를 잃고, 시들어갑니다.

 

Instead, Christ gives life back to us; Christ is the fullness of life, and when He confronted death He annihilated it forever: “Rising He destroyed death and renewed life,” (Eucharistic Prayer IV). Christ’s Passover is the definitive victory over death because He transformed His death into a supreme act of love. He died for love! And in the Eucharist, He wishes to communicate to us His paschal, victorious love. If we receive it with faith, we can also truly love God and our neighbor, we can love as He loved us, giving His life.

 

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돌려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충만된 생명이십니다. 죽음을 만나시면 죽음을 전멸시키십니다. “부활하시어 주님께서 죽음을 무찌르시고 생명을 새로 주셨습니다.” (성체기도 IV)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지극히 높은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키셨으니 그리스도의 파스카는 죽음을 이긴 결정적인 승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체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승리한 사랑인 그분의 파스카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 성체를 영하면, 우리도 진정으로 하느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분이 생명까지도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If the love of Christ is in me, I can give myself fully to the other, in the interior certainty that even if the other were to wound me, I would not die; otherwise, I would have to defend myself. The Martyrs, in fact, gave their life for this certainty of Christ’s victory over death. Only if we experience this power of Christ, the power of His love, are we truly free to give ourselves without fear. This is the Mass: to enter in the Passion,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of Jesus; when we go to Mass it’s as if we went to Calvary, the same thing.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을 전적으로 남을 위해 내어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는 내적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나를 방어해야 할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사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는 이 확신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힘, 그분의 사랑의 힘을 체험해야만 우리는 진정 아무 두려움 없이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내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사에 갈 때, 그것은 마치 갈바리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과 같습니다.

 

 

But think: if we in the moment of Mass go to Calvary let us think imaginatively and we know that that man there is Jesus, do we then permit ourselves to chat, to take photographs, to engage somewhat in a show? No! Because it’s Jesus! We will certainly be in silence, in mourning and also in the joy of being saved. When we enter the church to celebrate Mass we should think this: I am entering in Calvary, where Jesus gives His life for me. And thus the show disappears, chats disappear, comments and the things that remove us from this most beautiful thing that is the Mass disappear, it’s the triumph of Jesus.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미사 때 갈바리에 간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거기의 그 사람이 예수님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잡담을 하고 사진을 찍고 쇼에 온 것처럼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에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침묵하고, 슬퍼하고, 또한 구원 받음에 기뻐할 것입니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갈바리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쇼는 사라지고, 잡담이 사라지고, 가장 아름다운 일인 미사로부터 우리를 갈라놓는 어떤 것도 사라집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I think that now it’s clearer how Passover is rendered present and operative every time we celebrate Mass, namely, the meaning of the memorial. Participation in the Eucharist makes us enter in Christ’s Paschal Mystery, making us pass with Him from death to life, namely, there in Calvary. The Mass is to relive Calvary, it’s not a show.

 

이제 우리가 미사성제를 드릴 때마다 파스카가 어떻게 현존하고 실재하는지 즉 기념의 의미가 좀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미사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갈바리에서 주님과 함께 죽음에서 생명으로 통과합니다. 미사는 갈바리를 다시 사는 것입니다. 쇼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