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묵상

영어성경묵상

교황님의 강론

관리자
2017.11.19 21:49 3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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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s Homily - General Audience on November 8, 2017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oday we begin a new series of catecheses, which will point our look on the “heart” of the Church, namely, the Eucharist. It’s essential for us Christians to understand well the value and meaning of the Holy Mass, to live ever more fully our relationship with God.

 

교황님의 강론 (2017. 11. 8.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새로운 내용의 강론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번 강론은 교회의 심장즉 영성체로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온전하게 영유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미사의 가치와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We can’t forget the great number of Christians that, in the entire world, in two thousand years of history, endured unto death to defend the Eucharist; and how many again today risk their life to take part in Sunday Mass. In the year 304, during Diocletian’s persecutions, a group of Christians of North Africa were surprised, while celebrating Mass in a home, and were arrested. In the interrogation, the Roman Pro-Consul asked them why they did it, knowing that it was absolutely prohibited. And they answered: “We can’t live without Sunday,” which meant: if we can’t celebrate the Eucharist, we can’t live, our Christian life would die.

 

2000여년의 역사동안 전 세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성체를 지켜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위험 속에서 일요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304년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시대 박해에서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은 집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심문과정에서 로마지방총독은 영성체의식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였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주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이는 우리가 성체를 모실 수 없다면, 살 수 없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죽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In fact, Jesus said to His disciples: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 he who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has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John 6:53-54).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그를 내가 일으키리라” (John 6:53-54)

 

Those Christians of North Africa were killed because they were celebrating the Eucharist. They left the testimony that one can give up earthly life for the Eucharist, because it gives us eternal life, making us participants in Christ’s victory over death. A testimony that challenges all of us and calls for an answer on what it means for each one of us to take part in the Sacrifice of the Mass and approach the Lord’s Table. Are we seeking that source that “gushes living water” for eternal life? Which makes of our life a spiritual sacrifice of praise and thanksgiving and makes us one body with Christ? This is the most profound meaning of the Holy Eucharist, which means “thanksgiving”: thanksgiving to God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which involves us and transforms us in their communion of love.

 

위의 북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체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성체의식을 위해 지상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성체의식은 참여하는 사람들을 죽음을 극복한 예수님 안에 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미사에서 희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주님의 식탁에 다가가는 것의 의미의 답을 구하라고 우리 모두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찬양과 감사의 영적인 희생으로 만들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해주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생명수를 머리에 붓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감사를 의미하는 거룩한 영성체의식에서 그 가장 심오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영성체의식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그리고 성령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In the forthcoming catecheses I want to answer some of the important questions on the Eucharist and the Mass, to rediscover, or to discover how the love of God shines through this mystery of the faith. Vatican Council II was strongly animated by the desire to lead Christians to understand the grandeur of the faith and the beauty of the encounter with Christ. Therefore, it was necessary first of all to carry out, with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 an appropriate renewal of the Liturgy, because the Church lives continually of it and is renewed thanks to it.

 

다음으로, 저는 영성체의식과 미사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신비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또한 재발견하고자 함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위엄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도록 인도하려는 욕구에서 강력한 생동감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종교 의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우선 필요했습니다. 성당은 그것을 통해 지속되고, 그것 덕분에 새롭게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A key subject that the Conciliar Fathers stressed is the liturgical formation of the faithful, indispensable for a true renewal. And this is, in fact, the purpose of this series of catecheses that we begin today: to grow in knowledge of the great gift that God has given us in the Eucharist.

 

교부 사제들이 강조한 핵심 주제는, 진정한 개정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신앙인의 종교 의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오늘 시작한 이어질 강론의 목적입니다. ,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의 지식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The Eucharist is a wonderful event in which Jesus Christ, our life, makes Himself present. To take part in the Mass “is to live once again the redemptive Passion and Death of the Lord. It’s a theophany: the Lord makes Himself present on the altar to be offered to the Father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Homily in the Holy Mass, St. Martha’s Residence, February 10, 2014). The Lord is present there with us. We go there so often, we look at things, we chat among ourselves while the priest is celebrating the Eucharist . . . and we don’t celebrate close to Him. But it’s the Lord! If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came here today or a very important person of the world, it’s certain that we would all be close to him, that we would want to greet him. But think: when you go to Mass, the Lord is there! And you are distracted. It’s the Lord!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자신을 드러내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주님의 구원의 수난과 죽음을 다시 한 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현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께 바치는 성찬대 위에 계십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는 사제가 영성체의식을 하는 동안 너무 자주 성찬대에 가고, 다른 물건을 보며, 우리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그분 가까이에서 축복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주님입니다. 만약 공화국 대통령이나 세계 유명인사가 오늘 이곳에 온다면, 우리는 그 사람 가까이 가기를 원하고, 인사를 나누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미사에 가면, 주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임에도, 우리는 주의가 산만합니다.

 

We must give thought to this. “Father, it’s because the Masses are boring” “But, what are you saying, that the Lord is boring?” No, no, not the Mass, the priests” Ah, the priests must be converted, but it’s the Lord who is there!” Understood? Don’t forget it. “To take part in the Mass is to live once again the Passion and Death of the Lord.”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 이것은 신도들이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주님이 지루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미사요, 사제가 지루하다는 것입니다사제를 통해 발현되어야는 그곳에 있는 분은 주님입니다. 이해하셨나요? 잊지 마십시오.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다시 사는 것입니다

 

Let’s try now to ask ourselves some simple questions. For instance, why is the sign of the cross and the penitential act made at the beginning of the Mass? And here I would like to make another parenthesis. Have you seen the way children make the sign of the cross? You don’t know what they are doing, if it’s the sign of the cross or a design. They do this [he makes a confused gesture]. It’s necessary to teach children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well. Thus the Mass begins, thus life begins, thus the day begins. This means that we are redeemed with the Lord’s cross. Look at the children and teach them to make the sign of the cross well. And those Readings in the Mass, why are they there? Why are three Readings read on Sunday and two the other days? Why are they there, what does the Reading of the Mass mean? Why are they read and what do they offer? Or why at a certain point does the priest who presides over the celebration say: “Let us raise our hearts?” He doesn’t say: “Let us raise our phones to take a photograph!” No, it’s an awful thing! And I tell you that it makes me so sad when I celebrate here in the Square or in the Basilica and I see so many phones raised, not only of the faithful, but also of some priests and even of Bishops. But please! The Mass isn’t a show: it’s to go to encounter the Passion and Resurrection of the Lord. That’s why the priest says: Let us raise our hearts” What does this mean? Remember no telephones.

 

이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봅시다. 예를 들어, “미사를 시작할 때 성호를 긋고, 통회의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한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이들은 성호를 긋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그렇게 합니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동작으로 이것을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성호 긋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면, 생명이 시작되고, 따라서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구원됨을 의미합니다. 어린이들을 보고, 십자가의 표식을 잘 만들도록 가르치십시오. 미사의 독서는 왜 그곳에 있습니까? 왜 주일에는 세 번의 독서가 있고, 주중에는 두 번의 독서가 있습니까? 독서는 왜 있습니까? 미사의 독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독서를 진행하며, 이것이 전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한 왜 미사의 한 부분에서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가 마음을 드높이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기억해주십시오. 전화기 사용을 자제합시다.

 

It’s very important to turn to the fundamentals, to rediscover what is essential, through what one touches and sees in the celebration of the Sacraments. The question of the Apostle Saint Thomas (Cf. John 20:25), to be able to see and touch the wounds of the nails in Jesus’ body is the desire to be able in some way to “touch” God to believe Him. What Saint Thomas asks the Lord is what we are all in need of: to see Him, and touch Him to be able to recognize Him. The Sacraments come to meet this human need. The Sacraments, and the Eucharistic Celebration particularly, are signs of God’s love, the privileged ways for us to encounter Him.

 

성찬의식 중에 우리가 만지고 보는 것을 통해 근본으로 돌아가고, 핵심이 무엇인지 재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 몸의 할퀴어 진 상처를 보고 또 만지고 싶어 한 사도 성 토마스의 요청은(John 20:25)는 하느님을 믿기 위해 어떻게든 하느님과 접촉하고자 한 욕망일 것입니다. 성 토마스가 주님께 구한 것은 그분을 보고, 만지고, 알아보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찬의식은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위한 것입니다. 성찬의식과 영성체의식은 특히 하느님 사랑의 상징이며, 주님과 만날 수 있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Thus, through these catecheses, which we begin today, I would like to rediscover, together with you, the beauty that is hidden in the Eucharistic Celebration and that, once revealed, gives full meaning to each one’s life. May Our Lady accompany us in this new stretch of the way. Thank you.

 

그러므로, 앞으로 이어질 교리를 통해,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성체의식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우리 모두의 삶에 완전한 의미를 부여해줄 것입니다. 지금부터 새롭게 이어지는 길에 성모가 동행하시길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번역: 황민영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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