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강론

2017.11.06 22:04 484 0


Pope's Homily - General Audience on October 25, 2017

Dear Brothers and Sisters, good morning! This is the last catechesis on the theme of Christian hope, which has accompanied us from the beginning of this Liturgical Year. And I will conclude speaking of Paradise, as end of our hope.


교황님 강론 (2017.10.25. 일반접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것은 이번 전례해의 시작에서부터 다루어온 기독교의 희망을 주제로 한 마지막 강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희망 주제를 마무리하며, 낙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Paradise” is one of the last words spoken by Jesus on the cross, addressed to the good thief. Let us pause a moment on that scene. Jesus isn’t alone on the cross. Next to Him, on the right and on the left, are two evildoers. Perhaps, passing before those three crosses raised on Golgotha, someone sighed a sigh of relief, thinking that finally justice was done putting people like this to death.

"낙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마지막 단어 중의 하나로, 선량한 도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이 장면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혼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두 명의 악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골고다에 세워진 이 세 십자가 앞을 지나며 누군가가 마침내 정의가 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Next to Jesus there is also a self-confessed criminal: one who recognizes he deserved that terrible torture. We call him the “good thief,” who, opposing the other <thief>, says: we are receiving the due reward for our deeds (Cf. Luke 23:41).


그 중 한 사람은 자백한 도둑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끔찍한 고문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선량한 도둑이라 부릅니다. 그는 옆의 도둑에게 우리는 우리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On Calvary, that tragic and holy Friday, Jesus reaches the extreme of His Incarnation, of His solidarity with us sinners. Realized there was what the prophet Isaiah said of the Suffering Servant: “He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53:12; Cf. Luke 22:37).


갈보리에서, 그 비극적이고 성금요일에, 죄인인 우리와 결속하시며 예수님은 성육신(육화)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이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이 순간 예언자 이사야가 고통 받는 종에 대해 그는 범법자들에게 넘겨졌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It is there, on Calvary, that Jesus has the last meeting with a sinner, to open to him also the door of His Kingdom. This is interesting: it’s the only time the word “Paradise” appears in the Gospels. Jesus promises it to a “poor devil” who, on the wood of the cross, had the courage to address to Him the most humble request: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Luke 23:42). He didn’t have good works to assert, but he entrusts himself to Jesus, whom he recognizes as innocent, good, so different from himself (v. 41). That word of humble repentance was enough to touch Jesus’ heart.


갈보리에서 예수님은 죄인과의 마지막 만남을 갖고, 그에게 또한 주님 왕국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것이 낙원이라는 단어가 복음서에 나오는 유일한 때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기를 가지고 주님께 예수님, 당신의 왕국으로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주세요라고 가장 겸손한 요구를 한 가난한 악인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는 선을 행하지 못하였지만, 그것과 달리, 그가 결백하고 선하다고 말해주신 예수님께 자신을 맡깁니다. 겸손한 회개의 말은 예수님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The good thief reminds us of our true condition before God: that we are His children, that He has compassion for us, that He is disarmed every time we manifest to Him nostalgia for His love. In the rooms of so many hospitals or in the cells of prisons this miracle is repeated innumerable times: there is no person, no matter how badly he lived, for whom only despair remains and for whom grace is prohibited. We all present ourselves before God with empty hands, somewhat like the publican of the parable who paused to pray in the back of the Temple (Cf. Luke 18:13). And every time that a man, doing the last examination of conscience of his life, discovers that the deficits are greater compared to his good works, he must not be discouraged, but entrust himself to God’s mercy. And this gives us hope; this opens our heart!


선량한 도둑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참된 모습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하느님께 표현할 때마다, 하느님의 마음은 누그러지십니다. 수많은 병원의 병실과 교도소의 감옥에서 이 기적은 무수히 반복됩니다. 아무리 악한 삶을 살았더라도, 절망만 있고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성전 뒤에서 기도하기 위해 멈춘 마태복음 우화의 세리와 같이 하느님 앞에 섭니다. 삶의 양심에 대한 마지막 시험에서, 자신의 결함이 선행보다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낙담해서는 안 되고,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God is Father, and He waits for our return up to the end. And to the Prodigal Son who returns, who begins to confess his faults, the father closes his mouth with an embrace (Cf. Luke 15:20). This is God: this is how He loves us!


하느님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은 마지막까지 우리가 돌아가는 것을 기다리십니다. 돌아온 방탕한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포옹으로 입을 막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Paradise is not a dream place or an enchanted garden. Paradise is the embrace with God, infinite Love, and we enter it thanks to Jesus, who died on the cross for us. Where Jesus is, there is mercy and happiness; without Him there is cold and darkness. In the hour of death, a Christian repeats to Jesus: “Remember me.” And if there isn’t any one who remembers us, Jesus is there, next to us. He wants to take us to the most beautiful place that exists. He wants to take us there with the little or the lot of good that was in our life, so that nothing is lost of what He already redeemed. And He will bring to the Father’s House all that is in us that still needs to be redeemed: the failures and mistakes of a whole life. This is the end of our existence: when everything is fulfilled and is transformed in love.


낙원은 꿈의 장소 또는 매혹적인 정원이 아닙니다. 낙원은 하느님의 품이자 무한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덕분에 이곳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자비와 행복이 있습니다. 그 분 없이는 추위와 어두움이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반복해서 말합니다. “저를 기억해주세요그리고 만약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예수님이 그곳에,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있었던 작거나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지고 우리를 데려가고자 하십니다. 그분이 이미 구원해주신 것을 잃지 않도록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직 구원받아야 하는 삶의 실패와 실수를 안고 우리를 하느님의 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존재의 마지막입니다. 모든 것이 성취되고 사랑 안에서 변화됩니다.


If we believe this, death ceases to make us afraid, and we can also hope to depart from this world serenely and with much trust. Whoever has known Jesus, no longer feels anything. And we can also repeat the words of the elderly Simeon, who was also blessed by his meeting with Christ, after a whole life consumed in waiting: “Now, Master, you may let your servant go in peace, according to your word,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Luke 2:29-30).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죽음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평온하게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시므온 노인의 말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평생을 기다려온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축복받았습니다. “이제 주여, 주의 말씀에 따라 당신의 종이 편히 가도록 해주십시오. 저의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And in that instant, finally, we won’t be in need of anything, we will no longer see in a confused way. We won’t cry anymore uselessly, because everything has passed, also the prophecies, also knowledge, but not love, it remains, because “love never ends” (Cf. 1 Corinthians 13:8).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소용없이 울지 않을 것입니다. 예언도, 지식도, 모든 것이 지나갔고, 오직 사랑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번역: 황민영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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